“집단소송제, 미국형 보다 유럽형 도입해야”
“집단소송제, 미국형 보다 유럽형 도입해야”
  • 라안일 기자
  • 승인 2017.12.0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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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단체협의회, 이학영 의원과 손잡고 집단소송법 제정안 발의
30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소비자 집단소송제도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집단소송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라안일 기자.
30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소비자 집단소송제도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집단소송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라안일 기자.

[백세시대=라안일 기자]가습기 사태 등으로 국내에도 집단소송제 도입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소극적인 제외신고(opt-out, 옵트아웃)방식의 미국형보다 적극적인 소송 참가의사(opt-in, 옵트인) 방식의 유럽형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재 정부와 법조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의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방안과 다른 움직임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은 지난 2004년 증권거래과정에서 다수인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그 중 1인 또는 수인이 대표당사자가 돼 수행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미국형 방식의 집단소송제이다.

30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소비자 집단소송제도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서희석 교수는 발제를 통해 피해자의 재판청구권 박탈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의 최근 동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미국형은 대표당사자형으로 피해자 중에서 대표가 나서서 한다. 개별 피해자의 소송 참가의사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소송을 수행하다 보니 집단을 확정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대표당사자 변호인의 사전작업이 사실상 필요하다. 특히 소송허가 결정을 위한 재판도 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 3심을 거쳐야 한다. 본안도 3심제를 거치면 대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최대 10년이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별적 권리를 확정하는 것도 어렵다. 공통원인으로 피해를 입어도 피해는 각각 다르다. 인과관계, 과실상계, 손해액 등 개별쟁점이 다르기 때문에 피해자 개별적 사정을 고려한 권리구제절차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서 교수는 미국식 옵트아웃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패소 시 재판청구권이 박탈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원고 패소 시 실질적으로 제외된 이들을 제외한 총원에 포함된 자의 재판청구권 박탈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단체 등 제3자가 소송을 담당해 승소한 경우에만 적극적으로 소송 참가 의사를 밝힌 피해자들이 2단계 절차에 참가하는 변형된 옵트인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서 교수는 주요국 집단소송제도의 최근 동향을 예로 들었다. 서 교수에 따르면 2013년, 2014년 집단소송제를 도입한 프랑스와 일본의 경우 ‘소비자단체형 집단소송’ 모델을 시행하고 있다. 적격소비자단체가 원고를 맡아 1단계 확인을 거쳐 2단계 손해배상 및 금전배상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독일의 경우 투자자표본절차는 우리나라 증권관련 집단소송법과 유사하고 표본확인 소송법안은 제3자인 적격단체가 1단계 소송절차만 진행하고 2단계는 개별적인 소송으로 이뤄지고 있다.

서 교수는 특히 영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은 대표소송, 집합소송, 집단소송 3가지 제도가 혼합돼 있다. 현재 대표소송은 활용이 안 되고 집합소송, 집단소송이 활용되는 현실이다. 집단소송은 대표자가 하는 데 제3자도 가능하다. 피해자 소송관여 여부는 법원이 옵트인, 옵트아웃을 취사선택하고 있다.”

서 교수는 지난 2년간 소비자단체협의회와 함께 이 같은 내용이 들어간 소비자집단소송법 제정안(소협안)을 만들었다. 소협안은 제3자소송담형으로 원고단체가 승소한 경우에만 피해자가 2단계 절차에 참가하는 변형된 옵트인형으로 소비자가 피해자인 모든 금전지급청구를 포괄적인 대상으로 하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서 법률가 등 다른 전문가들은 유럽형의 소협안에 대해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미국형인 옵트아웃이 더 맞다고 반박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기업정책팀장은 옵트인 방식이 소송남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 팀장은 “옵트인 방식이 악의적인 소송을 저지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남소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소송의 공익적 측면을 고려해 원고단체에 소송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지원이 가능하도록 한 것은 소송남용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운영위원장인 박경준 변호사는 집단소송제도의 제정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 했지만 그 방식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박 변호사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회현상과 집단적인 소액다수의 피해자가 발생되지 않도록 예방한다는 점에서는 옵트아웃 방식으로 일거에 모든 피해자들이 구제를 받도록 할 필요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옵트아웃 방식의 재판청구권 박탈 우려에 대해서는 “재판청구권은 본인이 적극적으로 재판을 하고자 할 때 제외신고의 방식으로 권리보전이 되기 때문에 침해될 우려가 적다”며 “특히 소멸시효로 권리행사를 하지 않는 자의 재판청구권은 실효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당사자의 권리침해 문제는 발생할 우려가 매우 적다”고 진단했다.

다만 박 변호사는 대표당사자의 배임적 행위로 발생할 수 있는 총원의 이익저해행위를 사전에 차단하는 감독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대한변협법제연구원장인 최승재 변호사도 소협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국내 현실상 옵트아웃이 더 낫다는 입장을 보였다.

최 변호사는 “변협도 1년간의 연구를 하면서 2단계 집단소송도 검토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옵트아웃 방식인 증권집단소송을 수정하는 방향을 취했다”며 “이미 상당기간 집단소송제도가 운영됐고, 법원이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기 보다는 기존 제도의 운용을 더 잘하는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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