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 한 달, 7명 ‘존엄한 죽음’
연명의료결정 한 달, 7명 ‘존엄한 죽음’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7.12.01 10:41
  • 호수 5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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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사전의향서 2197건, 연명의료계획서 11건 작성” 발표
조영재 분당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지난 11월 29일 병원 대강당에서 ‘의료인의 입장에서 본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해 발표를 하며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조영재 분당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지난 11월 29일 병원 대강당에서 ‘의료인의 입장에서 본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해 발표를 하며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응급실로 오는 환자 등 연명의료 중단 기준 만들어야”

의료계, 분당서울대병원 심포지엄서 보완‧개선 요구

[백세시대=배지영기자]지난 10월 23일 연명의료 중단 시범사업을 시작한 이후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존엄한 죽음을 택한 환자가 7명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5명은 가족 의견에 의해 연명의료가 중단됐으며, 2명은 스스로의 의지로 치료를 멈췄다. 

보건복지부는 11월 28일 “시범사업 점검 결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하 사전의향서) 작성 2197건,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11건이 보고됐으며,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의 이행이 7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오는 2018년 2월 4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의 본격 시행에 앞서 지난 10월 23일부터 연명의료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연명의료 시범사업은 △사전의향서 상담·작성·등록(5개기관),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및 이행(10개기관) 등 2개 분야로 나뉜다.

사전의향서·연명의료계획서는 모두 연명의료 여부 등을 기록해둔다는 점에서 비슷하나,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임종기 환자가 의사와 함께 쓰고 사전의향서는 건강한 성인이 평소에 미리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기록해 놓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작성된 연명의료계획서 11건 가운데 남성은 7건, 여성 4건이었다. 연령대는 50대가 6건으로 가장 많았다. 모두 말기환자에 대해서 작성됐으며, 이들 중 10명은 암환자, 1명은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환자였다.

연명의료 중단을 택한 환자 7명 가운데 2명은 작성해둔 연명의료계획서에 따라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투여 등의 치료를 유보·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50대 남성 말기암 환자 두 명으로, 본인 뜻대로 임종했다. 

환자 본인의 뜻을 추정할 수 없어 가족 전원이 합의해 치료를 멈춘 경우는 한 건이었으며, 나머지 4건은 환자가 연명의료계획서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 가족 중 2명 이상의 진술로 치료를 유보·중단했다. 가족 중 2명이 “평소 환자는 연명치료를 원치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일치된 진술을 할 경우 치료 중단이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시범사업 결과처럼, 의료 현장에서는 연명의료계획서의 활용이 생각보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임종 단계에 있는 환자가 직접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가족 2인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 방식이 통용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위해 의사들이 환자와 상담을 진행한 건수는 44건인데 반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건수는 11건에 불과하다. 이는 환자나 환자가족이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의사들 또한 환자의 임종기와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판단하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잘못 판단했다가 법적인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다.

조영재 분당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지난 11월 29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의미와 개선방안’ 심포지엄에서 “법에서는 회복 가능성이 없고 수개월 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를 연명의료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말기 환자의 생존율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연명의료 결정 대상 환자를 분류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유언장이나 일기를 쓰는 것도 아니고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확인하는 것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환자실이 아닌 응급실, 집 등 다른 곳에서 환자가 임종에 접어들었을 때 의료진이 취해야 할 조치사항에 대한 법률적 기준 마련에 대한 주문도 제기했다. 조 교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여부를 떠나 응급실로 오는 환자는 무조건 살려야 하는 의무가 있으므로 모든 의료 시술이 총동원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처럼 환자 유형과 진료 공간별에 대한 연명의료 적용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법조계 또한 임종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하다고 꼬집었다. 윤동욱 변호사는 “대뇌 손상으로 의식이 없고 운동기능은 상실했으나, 자력으로 호흡이 가능한 경우에는 어떻게 볼 것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서 “또 말기 환자 중 어떤 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임종 과정에 해당하는지 구체적인 법률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박미라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를 통해 의료계가 요구하는 주요 사항을 귀담아듣고 있다”면서 “특히 제도 정착을 위해 연명의료결정법과 관련한 의료진 처벌 규정을 1년 유예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배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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