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수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두렵기만 한 치매… 5년만 잘 버티면 치료제 나와”
최길수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두렵기만 한 치매… 5년만 잘 버티면 치료제 나와”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12.01 10:52
  • 호수 59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뇌혈관 질환 권위자… 신경외과의 노벨상 ‘메달 오브 아너’ 수상
육영수 여사 응급수술 과정 최초 공개… “박정희 대통령 냉정한 분”

[백세시대=오현주기자]

국내 외과수술에 현미경을 도입, 의학발전에 한 획을 그은 최길수(82) 서울대 명예교수. 그는 제15차 세계신경외과학회(WFNS)로부터 ‘신경외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명예훈장(Medal of Honor, 메달 오브 아너)을 수상할 정도로 국제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또 故육영수 여사 피격사건 당시 응급수술 집도의로 세간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최 명예교수를 만나 일상적인 치매 예방법과 수술실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들었다.
 
-어떻게 지내시나.
“정년퇴임한지 꼭 17년 됐어요. 10년 전 한국배상의학회 회장을 맡아 그 일로 일주일에 한두 차례 나가고 있어요.”
 
-한국배상의학회는 무얼 하는 곳인가.
“법조계, 의료계, 보험업계 등 세 곳의 전문가들이 모여 각종 사고의 손해배상과 관련된 일을 합니다. 일종의 최고재판소인 셈이지요.”
 
-일반인에겐 생소하다.
“의료사고가 났을 경우 해당 분야 전문의와 교수들에게 사건을 의뢰해 판결을 받아요. 그걸 바탕으로 법원에서 판정을 합니다.”
 
-치매로 온 국민이 떨고 있다.
“치매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문제입니다. 인체는 영(정신)과 육(몸)으로 돼 있는데 치매는 이 중에서 정신을 제거해버리는 셈이니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알 수 있지요. 치매는 기억장애와 인지장애 두 가지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치매에 걸리면 부인도 몰라보니 정말 비참한 거지요.”
 
-치매 원인은 규명 됐다.
“원인은 비교적 간단해요. 뇌에는 1000억개의 신경세포가 있습니다.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독성단백질이 해마세포를 둘러싸면 신경이 마비되고 사멸해버려요. 독성단백질은 피에 섞여 나옵니다. 피 한 방울을 뽑아 단백질 농도수치를 확인하면 치매의 진행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치매 치료제는 현재로선 없다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5년만 잘 버티면 됩니다. 미‧영‧독‧일 등 각국에서 연합해 공동연구를 많이 하고 있어요. 그때쯤 되면 치료약이 나와 시중에 판매돼 치매에서 해방될 겁니다.”
 
-의사로서 치매에 어떻게 대처하나.
“저는 지금까지 일기를 써오고 있어요. 레이건 미국 대통령(1911~2004)도 일기를 썼어요. 그의 일기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8년 은퇴하고 4년 후에 서서히 기억상실이 일어났어요. 그걸 처음 안 이가 부인 낸시 여사예요. 대학병원에서 치매 진단 한다고 장황한 설문지 작성을 시키지만 다 불확실해요. 치매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제일 잘 알아요.”
 
-일기를 쓰면 어떤 점이 좋은가.
일상을 다시 기억해보는 과정에서 뭐가 잘못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어요. 일기를 의사에게 보여주면 확실한 치매 판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치매에 걸리면 생명이 단축되나.
“먹고 마시는 것과는 별 상관없어요.”
 
-치매에 걸리면 힘도 세지고 성욕도 강해진다는 속설이 있다.
“그렇지 않아요. 감정을 조절 못해 충동적이 됩니다. 욕을 한다든지 폭력을 쓴다든지.”
최길수 교수는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해방 후 귀국해 부산고, 서울대 의대를 나왔다.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학 교수, 대한신경외과학회 회장, 아시아오세아니안 국제두개저외과학회 회장, 세계신경학회 부회장, 충북대 병원장을 지냈다.
 
-왜 의사가 됐나.
“저는 원래 법대를 가고 싶었으나 의원이 되라는 할아버지의 유언을 따랐어요. 우리 집안 어른들이 다들 뇌졸중으로 돌아가셔서 그걸 고쳐야겠다는 생각도 했지요.”
 
-육영수 여사 응급수술 집도의였다.
“이 얘기는 지금껏 기자에게 하지 않았는데…. 그날(1974년 8월 15일) 아침에 TV를 켜놓고 ‘뉴스위크’에 실린 포드 미 대통령에 관한 기사를 보고 있었어요. 갑자기 TV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대통령이 단상 뒤로 몸을 피하고 박종규 경호실장이 무대를 가로질러 다니고 난리가 났더라고요. 직감으로 누군가 총상을 당했을지 모르고 만약 그렇다면 국립극장에서 가장 가까운 서울대 병원에 후송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최 교수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의사들에게 비상대기를 알리고 시발택시를 불렀다. 택시기사도 뉴스를 들었는지 최 교수에게 ‘의사냐’고 묻고는 중앙선을 넘나들며 차를 과격하게 몰았다. 병원 앞은 이미 정‧사복경찰들이 깔려 있었다. 마침 병원 수위가 최 교수를 알아봐 간단한 조사만 받고 통과가 됐다. 민헌기 대통령 주치의가 “어떻게 빨리 올 수 있었느냐”고 반기며 “육 여사가 머리에 총을 맞고 회복실에 누워 있다”고 알렸다.
 
-육 여사 상태가 어땠나.
“혈압이 잡히지 않았어요. 이송 중에 피를 너무 많이 흘렸던 거죠. 가운데 수건 같은 걸 넣고 넥타이 열댓 개로 머리를 칭칭 동여맸어요. 신기한 건 얼굴에 피가 하나도 안 묻었고 입고 있던 한복에도 피 한 방울 튀지 않은 겁니다. 얼굴색이 파랗게 변해 있었어요.”
수술을 하려면 수혈부터 해야 했다. 육 여사의 혈액형은 AB형. 서울대 병원의 혈액은행에는 피가 하나도 없었다. 박종규 경호실장은 마루바닥에 누워 “빨리 내 피를 뽑아 수혈하라”고 난리치고, 병원 밖에는 헌혈하려는 시민들이 길게 줄을 지었다. 시내 병원에 수소문한 결과 적십자병원에 마침 같은 혈액의 피가 30팩이 있어 그걸 가져왔다.
 
-수술은 어땠는가.
“이마에 정통으로 맞은 총알이 머리 뒤쪽으로 나가면서 뇌 가운데 있는 대동맥 가지를 건드려 피가 쏟아졌어요. 터진 부위를 지혈하고 파괴된 뇌를 정리했어요. 오전 10시에 수술을 시작해 오후 6시에 끝났습니다. 의식은 없는 상태로 혈압이 유지되고 자가 호흡도 하고 심장도 뛰었어요. 의학적으로는 살아있었지만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숨을 거뒀어요.”
 
-수술 후 가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나.
“가망이 있다, 없다보다는 어떡해서든 소생하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반응은.
“아, 대단히 냉정한 분이라는 걸 느꼈어요. 회복실에 들어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육 여사 쪽을)보고는 저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수행원들에게 ‘휴전선이 위태로우니 잘 단속하라’고 지시하고는 자리를 떴어요. 그게 다에요. 제 아내가 그렇게 됐다면 가까이 가서 맥박이라도 만져보고 할 텐데 그러지를 않았어요. 회복실에 오기 전 마취과장실에서 얘기를 들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말 냉정한 분이었습니다.”
 
-만약 살았더라도 뇌의 일부가 파괴됐다면 정상일 수가 없었을 텐데.
“정상적으로 살아요. 뇌 한쪽만 갉아먹는 뇌 기생충 때문에 뇌 절반을 절제한 사람이 이후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걸 봤어요. 제 학위논문도 ‘대뇌반구 절제술이 동물실험에서 어떤 이상을 보이는가’를 연구한 겁니다.”
 
-의사로서의 업적이라면.
“1970년대는 뇌수술을 육안으로만 해 거칠었어요. 미국 유학 중 알게 된 현미경 수술을 도입해 1973년 국내에선 처음으로 뇌수술에 적용했어요. 이후 모든 외과수술에서 현미경을 쓰는 시대가 열렸으니 이 분야의 파이오니아(개척자)인 셈입니다. 난이도가 높은 뇌수술이 두개저외과수술입니다. 이 수술을 많이 했고 관련 학회도 만드는 등 초석을 쌓았어요.”
 
-노인의 건강관리 비결을 소개해 달라.
“충북대 병원장 시절 노조와 단체협상을 하면서 (폭음으로)몸이 상했나 봐요. 어느 날 당뇨병 증상이 생겼어요. 모든 당뇨병 책을 구해 읽어보니 식이요법이나 약물요법으로는 나을 수 없고 운동이 좋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하루에 40분씩 속보를 했어요. 주치의가 절 보고 ‘당뇨 조절이 잘 되고 있다’며 놀라더라고요. 건강할 때 운동을 통해 건강을 지키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글‧사진=오현주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