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도 처음으로 요리도 하고 나무도 패고 장에도 가는 동안 생활의 기쁨을…
미란도 처음으로 요리도 하고 나무도 패고 장에도 가는 동안 생활의 기쁨을…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7.12.01 11:00
  • 호수 5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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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63]

말에 들은 것같이 집안 규격이 지나치게 넓어서 그렇게 일행이 대거(大擧)해 왔기에 망정이지 부부쯤이 와서는 어느 구석에 박혔는지를 모를 법도 했다. 복판에 강당만한 넓은 객실 겸 공동실이 있고 그 양편으로는 한 편에 두 간씩 조그만 독방이 합 네 간 붙어서 그 네 방의 문이 모두 객실로 열렸고 창 있는 양편 밖으로는 넓은 복도이자 베란다가 길게 뻗쳤다. 따로 요리실과 목욕실과 헛간이 붙은 것은 물론 흡사 합숙소같이도 대규모의 집 이었다. 전에 있던 주인이 이사해 간 후이라 방안에는 침대와 의자와 탁자들만이 앙상하게 남아 한산한 느낌이 났으나 만태는 별장을 망간 손에 넣었을 뿐으로 아직 설비도 치장도 베풀 사이가 없이 떠나들 왔던 까닭에 첫해의 설핀 살림을 살 수밖에 없이 된 것은 개척자의 슬픔으로 하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설핀 속에서 각각들 가지고 온 것으로 방들을 꾸미고 치장하고 새로운 경영에 맞도록들 힘썼다. 도회에서 흘러온 순회극단의 비애였던지도 모른다. 낯설은 극장 설핀 무대를 장식하느라고 못 박는 소리들을 탕탕 내면서 배경을 세우고 막을 드리우고 조명을 장치하느라고들 설레는 그 식이었다. 연극을 다한 며칠 뒤이면 다시 부수고 뜯고 할 것을 그래도 공들여 그 며칠을 위해서 꾸미고 만드는 것이다. 부서질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애써 꾸며야 하는 것이 인간의 소중한 경영이라는 것을 안 점에서는 미란들 피서단의 일행도 순회극단의 일행에 밑질 것이 없었다. 피서는 연극같이 불과 며칠에 그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의 정성껏 꾸며 가는 정신은 일반이었다. 넓은 창과 탁자 위를 덮기 위해서는 가지고 왔던 알록알록한 헝겊을 이모저모 오려서 벼락 커튼과 탁자보를 만들어야 하고 휑하니 무미한 벽을 감추기 위해서는 잡지 속의 그림이라도 모조리 뜯어 붙이는 편이 안 붙이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며 침대맡에는 화병도 놓고 인형도 세우고――가지고 온 것들을 모조리 적당하게 이용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여자들의 모양을 보고는 현마도 자기만이 팔짱을 끼고 있을 수도 없어서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는 톱과 자귀로 날림의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집에는 의자가 부족해서 만태가 올 때 여러 벌 사가지고 오기로는 되어 있으나 우선 아쉬운 판에 현마는 자진적으로 목수가 되어서 못을 개개 빗박으며 제 조작의 의자 제작에 종사했다. 필요가 행동을 요구하고 직업을 준다. 현마는 서투른 자귀질을 하다가는 빙그레 웃으면서 일종의 기쁨을 금하지 못하며 생활의 철학이라고 할까, 전에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한 가지의 이치를 터득하기 시작했다. 그 날림의자가 대단히 소중한 것이어서 여자들은 다투어서 한 개씩들을 침실로 나르며 객실에 놓으며들 했다. 비교적 호사스럽게 자라온 미란에게는 그런 궁박한 처지는 처음 맛보는 것이나 그럴 것이 없이 자란 아이에게도 원족을 나간 하루 동안의 부자유는 도리어 즐겁게 참을 수 있는 격으로 미란도 생후 처음으로 살림살이의 한몫을 거들어 요리도 하고 나무도 패고 장에도 가고 하는 동안에 격에 없는 생활의 기쁨을 알고 곤란을 곤란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현마에 밑지지 않게 도끼를 들고는 장작을 우겨댔으며 바구니를 들고 온천으로 장을 보러 갈 때에는 휘파람을 불며 어깨춤을 추며 하는 것이었다.

마침 네 사람이었던 까닭에 네 간의 침실을 한 간씩 차지하고는 밤 이외의 시간은 대개 객실에서들 지내기로 되었다. 한쪽 편의 두 간에는 세란과 미란의 형제가 들고 맞은편 두 간에는 현마와 죽석이 들게 된 것은 별로 계획과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닥치는 대로 한 간씩을 점령들 한 결과였다. 누구보다도 죽석이 주인인 까닭에 그에게 가장 좋은 방을 주게 되었던 것이요, 나머지 세 간 중에서는 제일 협착하고 작은 방이 있었으니 이것은 세 사람 중에서는 불가불 현마의 차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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