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주연상 받은 명배우 나문희
첫 주연상 받은 명배우 나문희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12.01 11:01
  • 호수 5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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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모처럼 배우다운 배우가 청룡영화상을 받았다. 지난 11월 25일 막을 내린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나문희 이야기다. 그는 참 독특한 경력을 쌓아왔다. 김혜자나 강부자처럼 전통적인 어머니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김영옥, 김수미처럼 망가지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름만 들어도 울컥하게 만드는 애잔함과 얼굴만 봐도 웃음이 터지는 코믹함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76세인 그는 여전히 충무로와 안방극장에서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으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김혜자와 강부자 등이 상대적으로 작품활동이 뜸해진 것과 달리 나문희는 그 어떤 젊은 배우보다 바삐 움직이고 있다.
1961년 약관의 나이로 MBC 1기 성우로 데뷔해 20년간 활동하다가 40세가 돼서야 배우로 전향했다. 또래 배우들이 외적으로 가장 아름다웠던 청춘배우 시기를 거쳐 중년배우로 전환하고 있을 때 그는 뒤늦게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성우로 다져놓은 탄탄한 내공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조연이었다. 좌중을 압도하는 연기력으로 1995년과 2002년 각각 드라마 연기대상을 수상했지만 역시 극의 조연으로서 거둔 쾌거였다. 1998년 개봉한 ‘조용한 가족’을 시작으로 2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역시 수많은 상을 거머쥐었지만 모두 조연상이었다. 힘든 집안 살림을 도맡고 굳은 일을 다 처리하면서도 자식과 남편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던 어머니들처럼, 나문희도 늘 조연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나문희가 드디어 주연상을 받았다. 국내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청룡영화상에서 말이다. 특히 그에게 상을 안긴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기존 관점과 다르게 위안부 문제에 접근해 호평을 받은 것도 한몫했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 보여준 천연덕스러운 코믹 연기를 기대하며 한바탕 웃을 생각으로 극장에 들어섰던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뒤통수’를 친 영화였다. 웃으러 갔다가 눈이 아플 정도로 울었다며 배신감을 토로하는 관객들이 많았다. 만약 다른 배우가 연기했더라면 감동은 절감됐을 것이다. 애잔함과 코믹함, 이 양극단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연기 덕분에 위안부란 사실을 숨겨야만 했던 피해자들의 고통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수상소감마저도 인상적이었다. 기독교와 불교의 화합을 추구한 익살스런 멘트와 동년배들을 향한 따뜻한 덕담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제 첫 주연상을 받은 그의 멋진 연기를 앞으로도 기대하며 수상소감을 적어본다.
“나의 친구 할머니들, 제가 이렇게 상을 받았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 상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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