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숭고함
못 살겠다 않겠습니다
재능 없다 않겠습니다
이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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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토록 궁색한 옹벽에 흙 한 줌 없이도 어찌 저리 아름답게 피었을까. 숭고하다는 걸 저 꽃으로 하여 알겠다. 조금만 힘들어도 못 살겠노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에게 저 디카시는 나를 너무도 부끄럽게 한다. 타고난 재능이 없어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고 변명이나 늘어놓던 나를 저 꽃 하나가 비웃는다. 박완서의 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를 떠올리며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알게 하는 것이 무릇 저 꽃뿐이겠는가.
폭우 쏟아지는 우듬지에서 새끼에게 빗방울 하나라도 들이칠까 꼼짝도 하지 않고 고스란히 비를 맞고 있는 어미새의 모정 앞에 저 살기 어렵다고 제 자식 내다버리는 인간을 부끄럽게 하고, 눈 덮인 시린 들판을 온몸으로 헤매며 먹이를 찾아 어미에게 가져다주는 까마귀의 효성이 작금의 우리를 또다시 부끄럽게 한다. 자연은 말없이 온몸으로 최고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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