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장애인 등 취약층, 지진 나도 속수무책
노인·장애인 등 취약층, 지진 나도 속수무책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12.01 14:09
  • 호수 5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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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달리 지진시 노인행동요령이 없고 10곳 중 두 곳은 경로당 책임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는 등 노인을 위한 재난 대비책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포항 지진 당시 금이 간 외벽을 살펴보는 어르신.
일본과 달리 지진시 노인행동요령이 없고 10곳 중 두 곳은 경로당 책임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는 등 노인을 위한 재난 대비책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포항 지진 당시 금이 간 외벽을 살펴보는 어르신.

지진시 노인행동요령 마련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매뉴얼 조차 없어 

경로당 10곳 중 2곳 보험 가입 안해… 일부 노인시설 화재 대책 미비

[백세시대=배성호기자]

“피해를 입은 건 수습할 수 있지만, 지진이 또 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몰라 무섭네요.” 

경북 포항 북구에 거주하는 박경자(77·가명) 어르신은 지난 11월 15일 규모 5.4의 지진을 경험한 후로 3주 가까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지진이 일어날 당시 경로당에 머물렀던 박 어르신은 혼자 있었다면 겁을 먹어 피신조차 못했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박 어르신은 “그런 지진은 처음이어서 다들 우왕좌왕했다”면서 “지진이 나면 노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경주 대지진 당시 노인 피해가 속출해 이에 대한 재난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지만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지진 대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겨울철 화재에 대비한 장비가 미흡한 노인요양시설이 잇달아 적발되면서 사실상 노인들을 위한 재난 대비 대책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진 발생 때 노인의 행동요령을 담은 상세한 매뉴얼을 구축하고 있다. 도쿄 방재홈페이지 ‘노인의 지진 대책’ 항목에는 “재해 약자인 고령자는 평소 재해에 대비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진 발생 시 책상 밑으로 들어가 몸을 보호한다거나 혹은 흔들림이 가라앉을  경우 맨발로 걷지 않도록 주의하라 등 구체적인 대비 요령을 알려주고 있다. 

반면 1년 사이 일어난 두 차례 큰 지진으로 국내도 지진 안전지역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지만 여전히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은 미흡하다. 재난 관련 대응방법과 관련해서는 정부와 지자체 홈페이지 등에 ‘국민행동요령’을 알리고 있다. 예를 들면 안전행정부에서 운영하는 ‘국민재난안전포털’을 살펴보면 지진 발생시 국민행동요령을 ‘상황별 행동요령’과 ‘장소별 행동요령’으로 구분하는데 그치고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와 장애인의 구체적 행동방법은 알려주지 않고 있다. 경주 지진 이후에도 시청이나 읍사무소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한 별도 재난교육을 실시하지 않아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실제로 이번 지진이 일어났을 때 포항시 노인들 대부분이 어찌할지 몰라 귀동냥에 의지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포항시 흥해읍에 사는 김 모(80) 어르신은 “집에 있는 게 무서워 그냥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면서 “최소한 대피 요령은 알려줘야 하지 않냐”며 항변했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는 늦게나마 후속 대책 강구에 나섰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이나 장애인들을 위한 지침을 올해 말까지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화재에 대비에서도 노인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부분도 개선해야 한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최근 요양병원과 노인요양시설 20곳에 대해 불시단속을 한 결과 12곳에서 55건의 위법사항을 적발했다. 

노인요양시설은 입주자들의 거동이 불편해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피가 어려워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다. 2014년 5월에도 전남 장성요양병원 화재로 21명이 사망한 바 있다. 요양병원과 노인요양시설에 대한 법규는 2010년 포항요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10명이 사망한 사고 이후 강화됐다. 강화된 법규는 요양병원과 노인요양시설에 화재 시 출입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자동열림장치를 지난해 6월까지 의무 설치하도록 했다.

이번 점검은 이 같은 자동열림장치 설치 여부, 피난시설 유지관리 여부, 피난통로 확보 여부 등에 대해 진행됐는데 그 결과 관악구의 A노인요양시설에서는 3층과 4층 복도에 철문을 설치해 화재 시 대피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구의 B노인요양시설은 외부로 통하는 출입문인 방화문을 잠갔다가 적발됐다. 자동열림장치 개방에 장애가 있는 곳도 3곳이었다. 

이밖에 탈출 시 사용할 수 있는 피난구조대가 침대·가구에 붙어 있거나 창문이 작아 사용불가한 경우가 11건 적발됐고, 화재 발생 시 자동으로 소방서에 관련 상황을 전달하는 ‘자동화재 속보설비’ 고장 3건, 화재수신기 사용 장애 1건으로 조사됐다. 또 국정감사 결과 전국 경로당 6만5192개소 중 16%인 9063개소가 사고발생시 신체·재산 피해를 보상해주는 손해배상책임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로당 10곳 중 2곳은 화재·낙상 등 인명사고가 발생해도 피해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세종시가 14.2%로 가입률이 가장 낮았고 제주(44.3%) 역시 두 곳 중 1곳은 피해를 입어도 보상을 받을 길이 막혀 있다. 

경로당은 ‘사회복지사업법’ 제2조에 따른 사회복지시설로서 ‘사회복지사업법’ 제34조의3 보험가입 의무 조항에 따라 책임보험에 의무 가입해야 한다. 

이에 대해 해당 지자체 관계자들은 “경로당 책임보험 가입비를 내년도 예산에 반영한다는 계획으로 예산편성을 수립 중”이라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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