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적 죽음
인격적 죽음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17.12.08 11:10
  • 호수 5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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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둘러싸여 있어도

결국 인간은 혼자 죽음에 직면

 

의연히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종교가 큰 힘이 될 것

내년부터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을 허용하는 일명 ‘존엄사법’이 본격 시행될 전망이다. 임종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환자는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인간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자기결정권을 제도화했다는 의미가 있다. 

한편 죽음학(Thanatology)에서는 ‘인격적 죽음’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임종환자와 가족 간에 애절하지만 따뜻한 사별의 대화를 나누는 것을 말한다. 의술의 힘에 의지해 더 오래 살 것처럼 가장하지 아니하고, 죽음을 인정하고 수용해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사랑과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이다. 

내가 유학해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할 때 가장 감명 깊게 수강했던 과목은 ‘죽음과 유가족’(Death&Bereavement)이었다. 그 과목의 교과서 저자들은 임종환자가 겨우 말귀를 알아듣는 2〜3살짜리 아이라 하더라도 인격적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주장한다. 그 공부를 할 때 나의 큰 아들이 바로 3살이었는데 나는 그 주장을 수긍은 하면서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워 눈물을 흘리며 수업준비를 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 죽음이란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 주제이다.

죽음은 인류의 모든 철학과 문학, 그리고 종교의 궁극적인 질문이지만 여전히 명쾌한 해답이 주어지지 않았다. 죽음준비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과정을 이해하고 죽음 이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동안 누렸던 지위와 성취했던 일들에 대해 감사하면서, 나를 치장했던 것들을 다 벗어버리고 진정 신에게 귀의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죽음준비엔 사회가 요구하는 자아(social self)를 벗어버리고 고유하고 진정한 내면의 자아(inner self)를 추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인간의 생애발달에 있어서 ‘자아’는 여러 단계를 거쳐 발달한다. 즉, 자아는 아동기에서 출발해 노년기에 이르도록 ‘자율성-자아존중감-자아정체감-자아실현-자아통합-자아초월’의 형태로 변화돼 인간을 성숙하게 만든다. 성인심리학 이론에 의하면 중‧장년기엔 자아실현, 초기 노년기엔 자아통합, 그리고 후기 노년기엔 자아초월의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자아실현이란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사람이 되고 자기가 성취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성취하는 것이다. 자아통합이란 자신의 과거 및 현재의 인생을 바라던 대로 살았다고 받아들이고 만족스럽고 의미 있게 생각하며 다가올 죽음을 인정하고 기다리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자아초월이란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관점을 물질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에서 보다 우주적이고 초월적인 시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자아초월을 생각할 수 있으니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가?

구체적인 죽음준비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물질적 및 정신적 유산을 남기고자 하는 노년기 심리적 특성을 이해하고 그 유산을 어떻게 남겨야 할지에 대해 탐구한다. 자기만의 독특한 장의절차를 자녀들과 상의하여 결정해 놓는다. 장기기증에 대해 이해한다. 배우자 죽음 이후의 적응과정을 이해하고, 홀로 살아가야 하는 슬프지만 지혜로운 요령을 익힌다. 

노년기 삶에 있어서 영성개발의 중요성을 이해한다. 불편한 관계에 있던 사람과는 사죄와 용서를 통해 화해한다. 인생은 아침에 잠깐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이지만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어느 한 시점에 존재했던 내 인생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탐구한다.  

제3의 인생을 지내고 나면 제4의 인생이 찾아오는데, 이 시기는 ‘4 D's’로 특징 지어진다. Disease(질병), Disability(장애), Dementia(치매), Death(죽음)이 그것이다. 어차피 한번은 거쳐야 하는 이 시기를 어떻게 지낼 것인가? 임종환자를 위한 호스피스의 개념을 이해하고, 인생의 마지막에 있을 수 있는 고독, 혼돈, 통증을 극복할 수 있는 개인적인 대처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가족에 둘러싸여 있어도 결국 인간은 혼자 죽음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고 의연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종교가 큰 힘이 된다. 사후에 대한 탐구는 현재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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