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행궁 옆 미술관엔 하루 종일 걷는 사람이 있다…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줄리안 오피’ 전
화성행궁 옆 미술관엔 하루 종일 걷는 사람이 있다…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줄리안 오피’ 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12.08 14:01
  • 호수 5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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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계 미술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yBa’의 대표작가 줄리안 오피의 개인전이 화성행궁 옆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미술관 유리벽면에 LED패널을 설치한 후 걸어 다니는 인간들의 모습을 표현한 ‘사람들’의 모습.
현재 세계 미술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yBa’의 대표작가 줄리안 오피의 개인전이 화성행궁 옆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미술관 유리벽면에 LED패널을 설치한 후 걸어 다니는 인간들의 모습을 표현한 ‘사람들’의 모습.

영국 현대미술 이끌고 있는 ‘yBa’ 대표 작가… 회화 등 80여점 선봬     

유리벽면에 LED패널 부착해 묘사한 ‘사람들’, ‘타워스2’ 등 인상적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지난 12월 5일, 경기 수원 화성행궁 일대에선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파 때문에 잔뜩 껴입긴 했지만 걸음만큼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같은 시각 화성행궁 옆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도 사람들이 분주하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보는 사람마저도 경쾌해지는 걸음으로 말이다. 다만 모습은 조금 달랐다. 미술관 유리벽면에 설치한 길이 24m의 LED 패널이 만들어낸 사람들이었다. 영국 대표 작가인 줄리안 오피(59)의 손에서 탄생한 ‘사람들’(People)은 추위를 잊은 듯 지칠 줄 모르고 걷고 또 걸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인 데미안 허스트와 함께 세계 미술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줄리안 오피의 개인전이 국내에서 열리고 있다. 경기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 개관 2주년을 기념해 내년 1월 21일까지 진행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줄리안 오피의 그림과 LED영상, 3D조각, 태피스트리 등 다양한 작품 약 80점을 선보인다.

현재 세계 미술계는 줄리안 오피와 데미안 허스트가 속한 와이비에이(yBa)가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 브리티시 아티스츠(young British artists)의 줄임말로 1980년대 말 이후 나타난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을 지칭한다.  

줄리안 오피는 영국 런던 출신으로 대형 광고판, 일본 목판화와 만화, 고전 초상화와 조각 등에서 영감을 받고 이를 특유의 스타일로 재해석하면서 주목받았다. 특히 영국 밴드 블러(Blur)의 앨범 ‘The Best Of’(2000) 커버디자인이 유명세를 타면서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맨 먼저 그가 그리고 조각한 사람 얼굴을 만나볼 수 있다. 줄리안 오피는 오랫동안 사람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펼쳐왔다. 사실 그가 처음부터 인물을 그렸던 건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신문에 실린 자신의 전시 비평에서 ‘사람이 없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그의 인물 작품들은 간략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두상 조각의 경우 인물을 3차원으로 스캔한 후 단순화 작업을 거쳐 입체적으로 프린트하는 과정을 거친다. 프린트된 조각 표면은 캔버스처럼 채색해 마치 만화 속 주인공이 현실로 나온 듯한 느낌을 준다. 

첫 번째 공간이 가까이서 들여다본 사람을 묘사했다면 두 번째 공간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본 모습들을 표현한 작품을 선보인다. 미술관 유리벽면에 설치한 ‘사람들’처럼 걷고 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수성싸인펜으로 그린듯한 줄리안 오피 특유의 색감으로 런던을 비롯해 서울, 호주 멜버른 등 대도시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은 경쾌한 생동감을 준다.

줄리안 오피는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사진작가에 의뢰해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활동을 진행했다. 대상자들 몰래 자연스럽게 찍은 사진이 같은 듯 개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의 원동력이 된 것. 몇 해 전 서울 사당동 등에서 포착한 한국 사람들 사진에 바탕한 그림들도 자리했다. 독특하고 우아한 차림새의 ‘템플 우먼’ 같은 그림이 있는가 하면 살짝 배가 나온 ‘컴퍼니맨’(회사원)이 이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2017년 작 ‘타워스 2’.
2017년 작 ‘타워스 2’.

또 이목구비를 그리지 않아서 관람객들이 저마다의 작품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볼 수 있도록 한 점도 눈길을 끈다. 전시실 한쪽엔 최신작 ‘타워스2’(2017)를 설치해 관람객들 스스로가 빌딩숲을 거니는 작품 속 주인공이 되도록 한 점도 인상적이다. 만화 속 빌딩 같은 색감을 가진 8미터 높이에 달하는 ‘타워스2’를 거닐다보면 저절로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세 번째 공간은 앞서 두 공간보다 훨씬 더 멀리서 사람을 바라본 작품을 소개한다. 마치 비행기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듯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고 풍경만 남은 상태를 캔버스에 담아냈다. 

복잡한 형상 대신 단순한 색과 면으로 표현한 ‘평원’(2017)과 ‘강’(2017)이 대표적이다. 각도와 거리 그리고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풍경의 효과를 주기 위해 실제 벽화 역시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또 중앙에 설치된 다섯 마리의 양 조각은 벽면의 풍경이 확장된 것으로,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에선 설치된 가벽들 사이로 역시 서로 다른 풍경을 묘사해 관람객들에게 여행을 다니는 기분을 준다. 일본 우키요에(浮世繪)의 목판화 등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산골짜기나 폭포의 모습을 컴퓨터와 TV 화면에 표현했는데 최신 기술을 적용해 실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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