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마무리를 똑같이 하고 싶지는 않아”
“인생 마무리를 똑같이 하고 싶지는 않아”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12.29 10:56
  • 호수 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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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장례식’‧‘죽음 상상’… 노인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백세시대=오현주기자]

연말 내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연초부터 이런 얘기 꺼내기가 좀 주저되지만 분위기 따지지 말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노인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자위(自慰)하는 문제여서다. 

일본의 건설기계분야 대기업 ‘고마쓰’의 안자키 사토루 전 회장이 조촐하게 치른 ‘생전 장례식’이 뇌리에 깊숙이 들어와 순간순간 반짝거린다. 안자키 전 회장은 올해 80세로 히토쓰바시대를 졸업하고 1961년 고마쓰에 입사해 국제부문을 담당했다. 1995년에 사장에 취임한 뒤 회장을 거쳐 2005년에 물러났다.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작년 11월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 사회면에 손바닥만한 안내광고를 냈다. “10월 초 암세포가 발견돼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연명효과가 조금 있겠지만 부작용 가능성도 있는 방사선이나 항암제 치료는 받고 싶지 않다. 아직 건강할 때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회비나 조의금은 불필요 하며 복장은 평상복이나 캐주얼 복으로 와 달라.”

다음달 11일, 도쿄의 아카사카ANA인터내셔널호텔 지하 1층에서 ‘감사의 모임’이라는 이름의 생전 장례식이 열렸다. 회사 관계자, 학교 동창생 등 지인들  약 1000명이 모였다. 식장은 지인들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으로 꾸며졌다. 참석자들은 안자키 전 회장이 중국 TV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영상, LA다저스의 야구선수와 기자회견을 했던 영상 등 안자키 전 회장의 현역시절 활약상을 감상했다.

이윽고 휠체어를 탄 안자키 전 회장은 테이블을 돌면서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누고 인사를 했다. 자신의 인생을 인간관계를 통해 하나하나 확인하고 마무리 짓는 ‘이별의 의식’을 치렀다. 

안자키 전 회장은 장례식을 마친 후 “슈카쓰(終活‧죽음을 준비하는 활동)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삶을 마감하듯 하는 게 싫어서 다같이 즐거울 수 있는 모임을 열었다. 많은 사람이 와줘서 솔직히 조금 피곤하기도 했지만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 죽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인생을 충분히 즐겨왔고 수명에도 한계가 있다.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는 것은 내 취향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자키 전 회장의 사례를 통해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이 ‘인생 마무리도 자기식대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자의 지인 중에 “나는 5년밖에 못살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가 있다. 그는 “그 말은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세상일을 두루 겪어온 나로서는 더 이상 신기할 것도, 재미난 것도 없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에 지루함과 무기력함이 더 크게 느껴질 뿐이다. 하나님은 왜 인간들이 수명을 자꾸 늘려가는 걸 방치하는지 모르겠다. 육십 넘어서부터 거실 소파에 앉아있을 때 종종 몸과 마음이 놀라울 정도로 진정되고 편안해진다. 그런 상태에서 죽음을 떠올리고 어떻게 죽을 지를 상상한다. 일종의 ‘죽음놀이’이다. 처음에는 죽음의 공포에 어쩔 줄을 모르다가 죽음으로써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영원한 안식 등을 떠올리면서 평정을 되찾고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는 용기 따위도 가슴 속에 충만해지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노인에게 죽음은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바로 옆에 다가와 있다.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 없는 ‘운명의 친구’를 냉대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안자키 전 회장의 경우처럼 감사의 이벤트로 맞이하거나 위의 지인처럼 ‘거실에서의 상상놀이’ 반복을 통해 친해지면 좋을 듯하다.  

새해 벽두부터 죽음 타령을 해 무척 죄송하지만 죽음을 자주 떠올리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에 대해 대인이 되고 신앙인이 되고 초월자가 된다.   

구순을 넘긴 김남조 시인이 최근 발표한 18번째 시집 ‘충만한 사랑’(열화당)에 담긴 ‘잘 가세요’란 시를 끝으로 죽음 얘기를 끝마친다. 

“잘 가세요/이 말은 풀벌레들이/한철을 울고 간/끝의 말이다/수틀에 수실을 기워 넣는/겨울 산수화의 으스스 추운 말이다// 잘 가세요/공중에 뿌리는 뼛가루의/희디 하얀 말이다/천지간에 자욱한/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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