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는 수영복을 입고 옥녀에게도 새빨간 한 벌을 사 입혀서 벌거벗은 채로…
단주는 수영복을 입고 옥녀에게도 새빨간 한 벌을 사 입혀서 벌거벗은 채로…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8.01.05 10:56
  • 호수 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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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68]

단주는 한 가지를 계획하면 낙자가 없다. 세란과의 경우가 그랬고 미란과의 경우가 그랬고 옥녀와의 경우 또한 그랬다. 하기는 그중에서 옥녀와의 경우가 가장 헐하고 수월했던지는 모른다. 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성공했던 것은 옥녀 자신이 발을 맞추어 주고 스스로 걸어와서 그 계획에 참가해 주었던 까닭인지도 모른다. 옥녀는 그 하루를 한계로 사람이 변한 듯 지저거리고 날뛰고 새장 속에서 놓여난 듯 히히덕거렸다. 단주가 전과는 달라서 은인이라는 생각이 나면서 그 앞에서 자기는 노예인 듯 그를 위하고 받들었다. 푸른 집은 두 사람을 위해서 생긴 보금자리, 그 속에서 시원스럽게 휘돌아치고 단주를 실컷 보고 농탕치고 하는 것이 다시없을 행복이었다.
실속으로는 피서지 별장보다는 나아서 살림살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흡족했다. 별장에서처럼 의자가 부족할 리도 없고 레코드를 탄식할 것도 없고 부엌의 양식을 걱정할 것도 없었다. 가게 차인꾼에게 단주는 얼마든지 먹을 것을 분부했고 음악도 시들해서는 걸어 놓은 레코드를 바늘이 갈리는 대로 언제까지든지 버려두었고 미란이 오면 핀잔을 맞을 것을 각오하면서도 피아노를 밤낮으로 울리고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면서 목청을 놓아 노래를 부르며 두 사람만의 집안이 전보다는 한층 요란하고 수선스러웠다. 피서 못 간 화풀이로 목욕통에는 철철 넘치게 수돗물을 대놓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철벅거리고 단주는 수영복을 입고 옥녀에게도 새빨간 한 벌을 사 입혀서 뜰을 해변으로 벌거벗은 채로 나서서는 수도의 호스를 끌어 나무, 꽃밭, 풀 숲, 할 것 없이 물줄기를 대서 비온 뒤같이 뜰을 온통 질펀하게 적셔 놓고는 무지개 돋은 그 속에서 꽃을 밟고 숲속에 숨기며 날을 지웠다. 옥녀에게는 주인들 떠난 것이 자기의 팔자를 고쳐준 듯 기쁜 날이 될 수 있는 대로 오래 있도록 축수하고도 싶었다. 자기를 생각하는 단주의 마음도 길이길이 변하지 말고 언제까지든지 같도록 원했다.
“가짜로 사람을 농락해 보구는 이제들 돌아오면 되루 본체만체 하려구.”
“난 이 집에서 너 같은 아이는 없다구 생각하는데.”
“정말. 미란이보다두.”
“그럼.”
“세란이보다두.”
“그럼.”
“요……. 생판 거짓말만.”
꼬집는 바람에,
“아야야얏.”
비명을 올리면서 단주는 풀숲으로 나뒹굴며 쓰러진다.
“미란이보다 낫다면 세상에 원할 것이 없게. 열두 번 죽어서 그렇게 태어날 수 있다면 열두 번이래두 죽겠다. 바른말을 해달라니까.”
“미란이 다 무어게. 독판 잘난 척 교만하구 주제넘구 언제든지 뽀르퉁하구 그까짓게 다 무어게.”
“밀려났으니까 그따위 소리지.”
“밀려나긴 누가 밀려나. 괜히 칭찬해 줘두 그러는구나.”
“정말 미란이보다 낫단 말야. 그럴까. 해가 서에서 돋는 셈이게.”
“그래두 그런다.”
“그럼 왜 속으로 얼른 피서를 가게 됐으면 해. 그 눈치 누가 모를까 봐.”
“피서는 누가. 그까짓 피서를 누가 가. 여기 이렇게 있는 게 얼마나 낫게.”
여자의 앞에서는 마술에 걸린 것같이 어디까지가 본심이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제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참으로 미란을 옥녀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지 어쩐지 피서지로 가기를 속으로 원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미란과 옥녀는 비교할 것이 아님이 사실이었고 피서지로 가고 싶다고 원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으나 옥녀의 앞에서 꼬집히면서 대답한 것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제 와서는 제 마음조차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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