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가 내달으면 단주는 뒤를 좇아서 방에서 방으로 기어코 옥녀를 잡아…
옥녀가 내달으면 단주는 뒤를 좇아서 방에서 방으로 기어코 옥녀를 잡아…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8.01.12 10:54
  • 호수 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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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69]

머릿속이 어리둥절하면서도 눈앞에 다구지게 맞붙어 앉은 옥녀를 역시 고운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만은 진정이었다.
“또 한번 말해봐.――피서 안 가구, 내가 미란이보다 낫구. 또 한 번 말해 보라니까.”
“피서 안 가구 미란이보다 낫구.”
“왜 이리 수다스럽게 묻는구 하면――그것이 여자루서 제일 듣구 싶은 말이거든. 누구보다두 잘 생겼다는 것. 옆을 떠나 주지 않겠다는 것. 누구나 여자의 맘을 뒤집어보지. 겉으로는 점잖은 체해두 이 원을 품구 있기는 일반일 테니. 여왕으로부터 노예에 이르기까지 누구 한 사람 빼놓지 않구 죄다 그럴 테니.”
혼자 부지런히 지껄이고는 옥녀는 벌컥 단주의 팔을 끌어 일으켜 손목을 끌고는 뜰을 내닫는 것이다. 단주는 완전히 허수아비였다. 소녀의 열정의 포로가 되고 있는 것을 번히 알면서도 별수 없이 지시대로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 위치의 바뀌어진 것을 사실 속으로는 놀라고 있었다. 그것이 있은 때부터 두 사람의 자리는 정반대로---단주가 아래로 옥녀가 위로 바뀌어진 것이었다. 분화산 같이 터져 나오는 소녀의 열정에 눈을 휘둥그렇게 굴리면서 어느 결엔지 거기에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대청으로 들어가면 창으로 나무 그림자가 그대로 들어와서 푸른 그늘을 지은 그 아래에서 옥녀는 단주를 위해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냉장고 속에 흐붓하게 준비했다.
삼복더위는 유난스럽게도 심해서 줄곧 찬물 속에나 얼음 속에 있기 전에는 대청에서도 견디기 어려워서 크림을 먹어도 그때뿐 더위가 확확 치트려 와서 단주는 주체스런 수영복까지 벗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늘 속에 가려진 집안은 밖 세상과는 떨어진 별천지여서 그 속에서는 옥녀도 단주를 본받았다. 기발하고도 자연스런 의욕――원시로 환원하려는 것이다. 그 야릇한 세상 속에서 원시인의 자웅은 멀거니 서 있기가 거북해서 술래잡기를 시작한다. 옥녀가 내달으면 단주는 뒤를 좇아서 방에서 방으로 기어코 옥녀를 잡아 버린다. 구석에 쓰러진 것을 욱박아 대고 항복을 받으면서 원시의 풍속을 모방했다. 정복이요 점령인 것이다. 그렇게 처녀지를 한 곳 두 곳 점령해서 영토가 점점 늘어가는 것이 단주에게는 둘도 없는 인생의 기쁨이었다.
“정말 모른 체만 하는 날이면 난 죽을 테야.”
“모른 체는 왜. 누구보다두 널 제일 좋아하는데.”
“언제부터 내가 눈에 들었게.”
“처음부터. 내가 이 집에 온 첫날부터.”
“미란이를 좋아하면서 나두 눈에 들었어?”
“미란이를 좋아한 건 좋아한 거구 너두 맘에 들더구나.”
“한꺼번에 두 사람씩을 좋아한단 말이야. 사람이 아니구……”
“두 사람을 왜 못 좋아해. 넌 꽃밭의 꽃을 꼭 한 가지만 좋아하니. 달리아두 좋구 애스터두 좋구 카칼리아두 좋구 해바라기도 좋구 봉선화 패랭이꽃 다 좋지 한 가지나 싫은 것이 있다더냐. 꽃을 가지구 뭔 좋구 뭔 싫다구 태(態)를 피우는 녀석같이 거짓말쟁이는 없더라. 꽃이란 다 좋은 게란다. 널 꽃이라는 건 아니나 미란이를 좋아하면서 너까지 좋아하는 게 거짓말이란 법이 어디 있다더냐. 미란이를 보는 한편 눈으로는 너를 뱀같이 노려왔단다.”
“어디가 맘에 들었게.”
“눈두 좋구 코두 좋구 입두 곱구…….”
“귀는.”
“귀두 복스럽구.”
“또.”
“머리카락두 맘에 들구 살결두 희구.”
“다리만은 미란에게두 밑지지 않는다나.”
“옳지 그 다리. 다리두 곱구 발두 자그마하구.”
“그리구.”
“손목두 얌전하구 가슴두 탐스럽구…….”
“…….”
“그리군. 그리군 모두가 곱지 한 가지나 빠지는 데가 있다더냐. 손가락에서 발가락까지가 어깨 허리 할 것 없이 모두가 이렇게 맘을 뒤흔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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