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올림픽 참가, 반길 일만은 아니다
北 올림픽 참가, 반길 일만은 아니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01.12 10:57
  • 호수 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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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의 ‘이불변 응만변<以不變 應萬燮>’ 전략으로 대응해야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로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다. 일부에선 반세기 넘게 갈등과 분노로 이어진 남북 관계가 스포츠를 계기로 화합하고, 대회 이후에는 북이 핵을 포기하고 세계 평화에 동참하는 ‘순한 양’이 될 거라는 착각에 붕 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북에 대한 근본적인 제재를 망각한 채 환영하고 반기는 건 또 다시 북에 이용당하는 불행을 자초하는 행위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가 카드를 꺼낸 이유는 하나다. 한국에 유화적인 손길을 내밀어 국제사회의 제재 공조를 깨는 한편으로 북한 핵 무력 완성의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다. 또 다른 배경이 있다면 이미지 개선을 위한 목적에서다. 정상적인 국가들의 평화로운 스포츠 대회에 동참함으로써 핵‧미사일 실험으로 세계평화를 깨는 전쟁국가라는 불리한 이미지를 불식시키려는 저의가 숨어 있다. 그래서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전적으로 반길 일만은 아니라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일찌감치 이런 조짐을 예상하고 남북 접촉을 불안한 눈으로 보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즈(NYT)는 1월 8일, ‘남한이 북한에 놀아나지 않으려면’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내보냈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북한 전문가 니콜라스 에버스타트가 쓴 이 칼럼은 “북한이 평창올림픽 개최를 한 달 앞두고 한국에 대화를 제안한 이유는 한국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가장 ‘약한 고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정부가 먼저 미국과의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하자고 제안한 것이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북한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북한이 회담을 제안한 숨은 의도를 파악하고 북측에도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북측 역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북측에 한국 뉴스를 전파하겠다고 요구하라”며 “불편한 주제를 거론하는 것을 꺼리지 말라”고 했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베트남을 다시 식민통치하려고 했다. 이를 막은 이가 호치민이다. 호치민은 1946년 3월, 프랑스와 잠정 협정을 맺었다. 프랑스연합 내 인도차이나 연방의 일원으로 베트남의 제한된 주권을 인정받는 내용이었다. 식민 수탈의 원수인 프랑스와 굴욕적 협정인 셈이다. 베트남 국민들은 이에 반발해 호치민을 비난했다. ‘반역자’라는 욕설까지 나왔다.

호치민은 100년을 지배했던 프랑스보다 1000년을 지배했던 중국을 더 무서워했다. 일본군 무장 해제를 핑계로 하노이에 진주한 중국(국민당)군을 철수시키려면 프랑스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프랑스는 곧 떠날 수밖에 없으리란 전략적 판단도 작용했다. 호치민은 정적과 국민여론을 향해 “평생 중국의 똥을 먹는 것보다는 프랑스인의 똥 냄새를 잠시 맡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때 호치민이 내세운 자신의 좌우명이 ‘이불변 응만변’(以不變 應萬燮)이다. 불변의 원칙으로 1만 가지 변화에 대응한다는 뜻이다. 민족 독립이라는 가치는 절대 양보하지 않지만 이를 이루는 방식은 유연해야 한다는 현실주의 철학이다.

이후 프랑스의 약속 위반으로 협정이 깨지자 호치민은 치열한 전투 끝에 1954년 프랑스를 몰아냄으로써 원칙을 입증했다. 이불변 응만변은 프랑스‧미국과의 전쟁에서는 유연한 전략전술의 지침이 됐고 통일 후에는 개혁‧개방을 이끄는 국가통치철학으로 이어졌다. 총부리를 겨눴던 한국과 미국에 대해서는 굳이 과거를 묻지 않는 응만변의 지혜를 발휘하고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는 이불변의 강단을 보였다. 

남한은 호치민의 지혜를 빌어 북의 핵 무력화란 한 가지 목표(이불변)를 정해 앞으로의 북에 대한 전략적 대응책(응만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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