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이 싫다했던 세상의 모든 어머니께
자장면이 싫다했던 세상의 모든 어머니께
  •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 승인 2018.01.12 11:05
  • 호수 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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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먹으려 다투는 자식들에

 자신이 먹을 것 다 내주면서

“난 그거 싫어해”했던 어머니들

 이제는 내가 먹고 행복해지자

 그래야 자식들도 행복할 것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님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끓여먹었던 라면/ 그러다 라면이 너무 지겨워서/ 맛있는 것 좀 먹자고 대들었어/ 그러자 어머님이 마지못해 꺼내신/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자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위 노래는 god(지오디)라는 가수가 부른 ‘어머니께’라는 노래 가사 일부분이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자식에게 자장면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노래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같은 반찬이 연달아 밥상에 오르는 걸 싫어하고 식성이 매우 까다로운 우리 아버지는 항상 반찬 투정이 심하셨다. 하지만 짭조름한 명란젓갈은 예외였다. 그 덕에 명란젓갈이 자주 밥상에 올랐는데 엄마는 매번 드시지 않았다.

아버지가 남기신 명란젓갈을 한 점이라도 더 차지하려 쟁탈전을 벌이는 나머지 식구들 사이에서 ‘짜기만 하고 도무지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며 한사코 사양하시던 엄마였다.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명란 한 보시기를 쪄서 맛있게 밥을 비벼 드시던 엄마를 보고 놀라서 물었다.

“엄마, 명란 싫어한다며?” 입맛이 바뀌셨단다. 난 믿지 않았다. 닭고기도 목에 붙은 살점만 떼어 드시고 생선도 먹을 것 없는 아가미만 집으시던 엄마. “다 같이 나눠먹음 될 것을 왜 그러실까. 난 나중에 엄마가 되어도 저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거야.” 그때는 이해 못했다. 

그런데 서른 중반이었던가. 한참 정신없이 아이들 키울 무렵의 어느 날. 햄버거와 함께 나온 감자튀김을 아이들과 함께 먹을 때였다. 기다랗고 예쁘게 잘 튀겨진 감자튀김 대신에 짧고 말라 비틀어진 작은 조각들만 골라먹는 내게 딸이 “엄만 그게 더 맛있어?”라고 물어 “더 바삭해서 좋다”고 말하는 내 자신. 내가 말해놓고 내 자신이 더 놀랐다. 미워하면 닮는다더니. 이 땅의 우리 엄마들, 다 그렇게 살아왔다. 자장면도, 명란젓도, 닭다리까지도. 내 입 대신 자식들 입에 넣어가며 그렇게들 살아왔다. 이제는 세월도 많이 흘렀고  팍팍했던 살림살이도 나아져서 자장면에 탕수육까지 곁들이고 명란으로 파스타까지 비벼먹는 호사까지 부려보지만 엄마들의 ‘희생 육아’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요즘은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더니 혼기 찬 자식들이 한 집 걸러 하나씩은 있는 것 같다. 운이 좋아 자식이 다행히 짝을 찾았다 하더라도 맞벌이 하며 제 자식 키우기 힘들다고 부모에게 손 내미는 자식들도 허다하게 많다. 육아가 ‘네버 엔딩 스토리’가 되어버린 게다.

자식 농사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소문난 고교 동창 친구. 한참 때는 자식 학교 뒷바라지 하느라 바쁘더니 지금은 판검사가 된 바쁜 아들과 며느리 대신에 쌍둥이 손녀 데리고 키우느라 한참 씨름중이라는데, 관절염에다 척추 협착증까지 온전한 뼈가 하나도 없다던 그녀가 새삼스레 걱정이다.

쌍둥이를 다 키우고 보자는데, 글쎄다. 일흔 되면 볼 여유가 좀 생길라나. 어미 새는 부지런히 벌레 물어다 먹여 새끼들이 둥지를 떠날 때가 되면 육아에서 해방되고, 개도 젖만 떼면 부모 할 도리가 끝나지만 '인간 육아'는 도무지 끝이 안 보인다. 손주까지 다 키우고 나면 에너지도 바닥이고 주머니도 바닥이고. 빈곤 노인이 따로 있나. 아프고 돈 없으면 빈곤 노인이지.

화면이 나오지 않을 때마다 손바닥으로 탁탁 두드리면 다시 화면이 나오던 예전의 그 오래된 TV 같이 다 낡아버린 몸.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란 카드사 광고마냥 이제는 쉬엄쉬엄 놀 때도 되었나 보다. 10년 전 퇴직했던 남편 선배 얘기다. 이제 살아야 몇 년을 더 살까 싶어서 10년쯤 더 살 돈만 남기고는 남은 재산을 정리해서 다 자식들에게 나눠줬단다. 지금 그의 나이 일흔이다. 그런데 아직도 너무 건강하고 정정하단다. 앞으로 계속 필요한 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나갈 돈도 많은데 자식들에게 준 돈을 도로 돌려달라고 할 수도 없고 고민이 많다고 한다.  아무래도 정리가 너무 빨랐던 게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자아 찾기’가 한참 유행이라 하더라. 그 자아 찾기, 우리 노인들도 한번 해보자. 주머니 탁탁 털어 자식 교육시키고 자식의 그 자식까지 챙기느라 거덜 난 빈털털이 주머니. 

아무리 아프고 손에 쥔 돈 없다하더라도 잘사는 자식들만 보면 허망한 몸과 마음이 치유가 되려나. 자식들 입장에서는 속이 텅 빈 껍데기만 남은 부모보다, 하고 싶은 것 하면서 행복해 보이는 부모를 더 좋아하지는 않을까?

자식들에게 재산을 남겨주기보다는 행복해 보이는 내 모습의 기억을 남겨 주자. 이제부터 더 나이 들기 전에, 좋은 것과 맛있는 것 보면 자식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먹고 내가 챙기고 내가 먼저 행복해지자. 그 모습을 보는 내 자식들도 행복하리라 굳게 믿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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