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장병원의 실태와 개선 방안, ‘의료생협’ 허점 악용 등 갈수록 진화
사무장병원의 실태와 개선 방안, ‘의료생협’ 허점 악용 등 갈수록 진화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8.01.12 13:21
  • 호수 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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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면서 사무장병원의 형태도 교묘하게 진화해 많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사무장병원 근절 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시대가 바뀌면서 사무장병원의 형태도 교묘하게 진화해 많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사무장병원 근절 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조합원 허위 등록해 ‘의료생협’ 운영… 의사와 합자 투자 방식도 늘어

과잉진료‧보험사기 온상… 자정 노력과 내부 고발자 구제책 필요 

[백세시대=배지영기자]

의사가 아닌 A씨는 이사회 회의록을 위조해 의료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을 만든 후 지난 2015년 1월 전북 김제시에 의원을 열었다. A씨는 한 쪽 귀가 잘 들리지 않던 고령의 의사(82)에게 진료를 보게 했고, 2016년 10월에는 마비 증세가 있어 글씨도 제대로 쓰지 못하던 다른 은퇴 의사(84)에게 환자를 보도록 했다. 진료 및 처방 기록은 간호조무사가 도맡았고, 물리치료 자격증이 없는 A씨의 부인이 물리치료도 하고 주사도 놓았다. A씨는 이 같은 불법 행위로 2년 간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약 4억5000만원의 진료비를 받아 챙겼다.

사무장과 병원장이 병원설립 자금을 공동 투자하는 합자방식을 이용하거나 의료생협을 만들어 병원을 개설하는 등 사무장병원을 이용한 범죄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문제는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해 사무장병원을 통제할만한 기전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무장병원은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의료인의 면허를 빌리는 등 불법적으로 개설한 병원을 말한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나 비영리법인, 국가 등만 병원을 개설‧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공공성을 바탕으로 병원을 운영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같은 사무장병원이 무분별하게 확산되면 환자들이 과잉 진료, 무면허 진료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고, 심하면 생명의 위협까지 받을 수 있다. 

현재 한 사무장병원에서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모씨는 “병원의 실제 운영자인 ‘사무장’에게 고용된 의사는 수익을 많이 내면 인센티브를 받기로 계약을 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그러다보니 2가지 약이 필요한 환자에게 5가지 약을 처방하고, 더 이상 안 와도 되는 환자를 3일 후 또 오라고 하는 방식으로 과잉진료를 할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한 입원이 필요하지 않은 시술인데도 입원을 권하기도 하고, 입원 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민간 보험에 가입한 환자는 입원을 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진료비와 보험금을 타내기도 한다고 했다. 사무장병원이 ‘보험사기의 온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기존에 활개를 치던 사무장병원은 의사, 한의사의 명의를 이용해 사무장병원을 개설, 운영하면서 건강보험재정에 악영향을 끼치는 정도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이들의 범죄행위는 점차 대범해지고 있다. 법과 제도, 새로운 형태의 투자기법이 발달하면서 사무장병원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사채 빌려주고 투자 회수 방식도

최근 사무장병원은 사무장과 병원장이 병원설립 자금을 공동 투자하는 합자방식이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자금을 제공한 개인은 행정원장이라는 직함으로 병원운영에 개입해 고정적인 급여와 함께 별도로 개설한 계좌로 병원 수익을 빼돌리는 식이다. 또한 사무장이 병원장에게 사채를 빌려주고 고리의 이자대신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의료생협’을 가장한 사무장병원도 늘고 있다. 의료생협은 지역주민들이 자신들의 건강을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관리해 줄 주치의를 두고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조합원들이 운영하는 병원을 말한다. 조합원 300명 이상이 최소 3000만원을 출자하면 지방자치단체의 인가를 받아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의료생협은 아는 사람들이나 무료 식사 등으로 노인들을 꾀어 조합원으로 허위 등록한 후, 자신들이 출자금을 대납해 ‘가짜 조합’을 만들어 사무장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기존 사무장병원은 의사가 바뀔 때마다 허가를 다시 받아야 하고, 최근에는 단속 위험이 큰 탓에 면허를 빌릴 의사를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무장병원은 교묘하고 빠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사무장병원을 적발하고 부당이득을 환수하려는 보건당국의 대응 노력은 제자리걸음에 그치고 있다. 낮은 부당이득 징수율 때문이다. 

심평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적발된 사무장병원에 대한 부당이득 환수결정 금액은 1조3406억원이었지만, 실제 징수된 것은 915억원(징수율 6%)에 그쳤다. 특히 의료생협 형태 사무장병원의 징수율은 더 낮았다. 같은 기간 환수결정금액 3475억원 중 실제로 환수된 것은 84억원(징수율 2.4%)에 불과했다.

사무장병원은 일단 개설되면 적발하기 어렵고, 적발되더라도 그 부당이득금 징수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조기에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내부자의 공익신고 활성화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사무장병원 등 병원의 건보 부당청구를 내부종사자가 신고할 경우 최고 1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사무장병원의 의사나 사무장이 자진 신고할 경우 과징금 경감 등의 제도는 없는 상태여서 이에 대한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게 의료계 전언이다.

이에 윤종필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서 사무장병원 자진신고 의료인에 대한 ‘리니언시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리니언시 제도는 자진신고 시 과징금을 경감 또는 감면하는 제도를 말한다. 

병원장 자주 바뀌는 곳 의심

환자들이 사무장병원을 미리 의심하고 애초에 피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우선 요양병원에 입원할 때 병원 직원이 다른 병원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간병비를 제시한다면 사무장병원을 의심해야 한다. 이런 경우, 병원이 간병인의 1인당 환자수를 과다하게 늘려 정상적인 돌봄을 어렵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 관계자는 “병원장이 자주 바뀌는 경우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의료법인의 경우 병원장이 바뀌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그 주기가 너무 짧다면 사무장이 ‘바지사장’을 고용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면서 “야간에 근무하는 간호 인력이 너무 적거나 의사가 지나치게 고령인 경우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료계 내 자정노력도 필요하다. 최근 노인요양병원협회는 전체 요양병원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불법 사무장병원’을 근절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불법 사무장병원은 부당청구·보험사기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의료기관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요양병원뿐만 아니라 전체 의료계 ‘공공의 적’이라는 지적에서다. 

이를 위해 협회는 홈페이지에 불법의료신고센터를 개설·운영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국민건강보험공단 등과 함께 불법 의료기관 대응 협의체를 구성, 불법 사무장병원의 현황을 파악하고 정보 공유를 통해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필순 노인요양병원협회장은 “협회는 요양병원의 권익 신장과 더불어 노인의료복지를 위한 윤리의식을 높이고, 자정작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정부에 사무장병원 척결을 위한 강력한 대책 마련도 요구했다”고 강조했다.        

배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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