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70대 노인과 20대 여성의 색다른 동거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70대 노인과 20대 여성의 색다른 동거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1.12 13:24
  • 호수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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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신구 주연 더블 캐스팅… 세대 갈등 감동적으로 풀어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괴팍한 노인이 있다. 독거노인으로 지내던 그에게 어느 날 같이 살자고 다짜고짜 쳐들어온 룸메이트가 생겼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20대 여자와 졸지에 한집에 살게 된 노인은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아들을 유혹하라는 막장에 가까운 제안까지 한다. 사회면에서나 볼 수 있는 이 사연은 놀랍게도 대학로를 눈물과 감동으로 물들인 연극의 내용이다. 이순재와 신구가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은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 이야기다.

TV스타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앙리할아버지와 나’가 오는 2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명문화공장 비발디파크홀에서 공연된다. 작품은 아버지의 잔소리에 시달리다 꿈을 품고 상경한 ‘콘스탄스’가 낯선 앙리의 집에 세들어 살기 시작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무대는 아내와 사별한 뒤 넓은 집에서 혼자 살게 된 앙리와 그의 집 방 한 칸에 세 들어 살고자 찾아온 콘스탄스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공동묘지가 보이는 음산한 풍경, 곰팡이와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데다가 ‘친구 초대 불가’까지. 앙리의 집은 여러모로 세입자에게 악조건이지만 당장 저렴한 방을 구해야 하는 콘스탄스는 무조건 계약을 한다.

앙리 역시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성 정체성마저 혼란을 겪는 콘스탄스를 부담스러워 한다. 각종 규칙을 세워 콘스탄스를 몰아세우고 기선을 제압하고 통제하려 하는데 콘스탄스는 되레 낙천적인 태도로 앙리를 쥐락펴락한다. 

결국 앙리는 티 없이 맑고 발랄한 콘스탄스에게 매료돼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연다. 마음에 드는 구석 하나 없는 며느리 ‘발레리’와 그런 아내를 끼고도는 아들 ‘폴’과는 대화가 단절된 지 오래. 반면 콘스탄스의 밝은 웃음을 지으며 털어놓는 고민에는 귀찮은 듯 굴면서도 너그럽게 들어준다. 

그러던 중 앙리는 콘스탄스에게 아들을 유혹해달라고 제안한다. 물론 공짜는 없다. 6개월치 방세를 깎아주겠다고 제시하자 한 푼이 아쉬운 콘스탄스는 이를 수락한다. 20대 특유의 귀여움과 발랄함으로 무장한 콘스탄스는 폴을 거의 유혹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앙리와 콘스탄스에게 심경의 변화가 찾아오고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작품은 앙리와 폴, 발레리 그리고 콘스탄스의 관계를 통해 현재 한국의 세대 갈등을 돌아보게 한다.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겪고 생존을 위해 달렸으나 끝내 결국 혼자 남아 아들 내외와도 담을 쌓고 남처럼 쓸쓸한 노년을 보내는 전쟁 세대 앙리, 그런 아버지를 사랑하고 염려하지만 불임으로 인해 스트레스받고 막대한 상속세도 걱정해야 하는 폴과 발레리, 대학 졸업도 어려운데 취업은 더 막막한 콘스탄스 등의 사연은 현재 독거노인과 세대 갈등으로 고민 중인 우리나라의 사회문제와 닮았다. 앙리와 콘스탄스가 서로를 위하며 가족으로 거듭나는 모습은 우리의 갈등 역시 풀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로 다가온다.

대배우 이순재와 신구와 콘스탄스를 번갈아 연기한 김슬기, 박소담의 완벽한 호흡은 극의 완성도를 높이고 객석에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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