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운사이징’ …키가 볼펜 크기로 작아진 덕에 100배 부자가 된다면
영화 ‘다운사이징’ …키가 볼펜 크기로 작아진 덕에 100배 부자가 된다면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1.12 13:27
  • 호수 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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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무게를 2744분의 1로 줄이는 다운사이징 시술을 통해 소인이 된 사람들의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다룬 '다운사이징'이 1월 11일 개봉했다. 사진은 극중 주인공 '폴'(왼쪽)이 먼저 다운사이징을 통해 소인이 된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
사람의 무게를 2744분의 1로 줄이는 다운사이징 시술을 통해 소인이 된 사람들의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다룬 '다운사이징'이 1월 11일 개봉했다. 사진은 극중 주인공 '폴'(왼쪽)이 먼저 다운사이징을 통해 소인이 된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

작아지는 기술로 소인이 된 사람들 얘기… 호화 생활 위해 모험 감행

인간의 욕망, 양극화·환경파괴 등 현대 사회의 문제 유쾌하게 풍자

[백세시대=배성호기자]

매달 정부에서 기초연금으로 2000만원을 준다면? 정부의 재정이 걱정되겠지만 아마 마다하는 어르신은 없을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신체가 모나미 볼펜 크기로 작아져야 한다. 기초연금 20만원의 가치가 몸이 작아짐으로 인해 2000만원으로 100배 상승한 것이다. 배출하는 쓰레기도 적어지니 환경을 지키는 데도 일조한다. 다만, 한 번 작아지면 다시 커질 방법은 없다. 만약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런 깜찍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개봉한다. 1월 11일 개봉한 영화 ‘다운사이징’은 새로 개발된 신기술을 통해 12.7cm, 몸무게 25g 밖에 안 되는 소인이 된 ‘폴’을 통해 현대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풍자한다. 

전작 ‘사이드 웨이’(2004)와 ‘디센던트’(2011)를 통해 두 차례나 아카데미 각색상을 거머쥔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이번 신작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발휘해 스스로 소인이 되는 사람들이란 소재를 흥미롭게 재단했다. 

작품은 평범한 작업치료사로 살다 중년에 접어든 ‘폴’(맷 데이먼 분)이 다운사이징으로 소인이 된 후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다룬다. 먼저 작품은 노르웨이의 한 연구소에서 다운사이징을 개발하고 이 기술을 설명하는 것에 초반 시간을 할애한다. 유기체의 무게를 2744분의 1로 줄이는 다운사이징은 지구온난화로 인류가 파멸하는 것을 막기 위한 괴짜 천재 과학자들에 의해 개발됐다. 36명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시도한 결과 4년간 배출한 쓰레기가 비닐봉지 한 봉지에 불과할 정도로 효과도 컸다. 이 기술을 적용해 소인이 되면 부수적으로 돈의 가치가 100배 이상 늘어나 수영장이 딸린 300평 대저택도 6000여만원이면 구입이 가능하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다운사이징 임상실험 결과가 공개된 10년 후부터 펼쳐진다. 단골 술집에서 실험결과 뉴스를 지켜보던 사회 초년생 폴은 어느덧 결혼까지 하고 평범한 직장생활을 이어간다. 퇴근 후 여전히 절친들과 술 한잔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푸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턱없이 높아진 집값 때문에 어릴 때 태어난 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현실에서 큰 타격을 입은 친구 ‘데이브’가 다운사이징을 통해 소인국 ‘레저랜드’에서 호화스럽게 사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 역시 삶의 변화를 주기 위해 아내와 상의 후 다운사이징을 시도한다. 하지만 아내가 시술 직전 도망쳐 결국 혼자만 소인국에 입성하게 되고 기상천외한 일들에 휘말리게 된다.

작품의 초중반에선 다운사이징 시술로 인해 달라진 세상을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소인은 영화에서 간간히 다룬 소재다. 다만 기존 작품들이 소인이 된 우스꽝스런 상황에 집중했다면 이번 작품은 소인이 된 사람들의 갖가지 사연을 통해 차별성을 꾀한다. 

극중 인물들이 소인이 된 이유는 황제처럼 지내고 싶어서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의 모순 가득한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상적인 직장생활로는 내 집 장만은 꿈도 못 꾼다”며 비트코인에 열광하는 20~30대 청년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또 소인이 된 만큼 투표권도 4분의 1만 행사하라는 취객의 대사에서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편견을 엿볼 수 있다.

작품의 진짜 이야기는 후반부에 있다. 다운사이징은 환경 파괴로 인한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혼란을 겪는 일부 국가에서 이를 정적 제거에 악용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강제로 소인이 된 이들 역시 레저랜드로 보내졌는데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인국에서조차 극빈층으로 내몰린다. 

뿐만 아니라 다운사이징이 결국 인류의 멸종을 막지 못한다는 설정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인류를 위해 다운사이징을 최초로 시도했던 사람들이 다운사이징에 이어 두 번째로 시도하는 해결책 역시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안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유쾌하다. 심각한 사회·환경문제를 꼬집으며 관객의 급소를 콕콕 찌르면서도 주인공이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희망과 함께 큰 웃음을 선사한다.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팔방미인 배우 맷 데이먼이 연기한 마냥 착하고 중요한 순간에 되는 일이 없는 불운한 남자인 ‘폴’과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두 차례 수상한 크리스토프 왈츠가 분한 돈되는 일이면 뭐든지 하는 파티광 ‘두샨’ 등 매력적인 소인들을 통해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진중하게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역할은 베트남계 미국 배우 홍 차우가 연기한 ‘녹 란’이다. 베트남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를 주도하다 강제로 소인이 돼 레저랜드로 온 그는 이 과정에서 다리 하나를 잃는다. 자포자기 할만한 상황이지만 그는 몸에 맞지 않은 의족을 끼고 청소회사를 운영해 벌어들인 소득으로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 부자 소인들에게 음식과 약을 요구할 때도 당당하다.  짧은 영어로 폴을 타박하며 톡톡 내뱉는 대사는 매번 웃음 짓게 한다. 자신의 암울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는 녹 란의 삶에 영화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담겨 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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