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인 100만명이 즐기는 한궁 대한체육회 회원 가입 길 막막
동호인 100만명이 즐기는 한궁 대한체육회 회원 가입 길 막막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1.19 10:29
  • 호수 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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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층을 비롯해 100만명이 즐기는 생활스포츠 한궁이 높은 기준 탓에 대한체육회 회원종목단체에 가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수백명의 어르신들이 참여한 한 한궁대회의 모습.
고령층을 비롯해 100만명이 즐기는 생활스포츠 한궁이 높은 기준 탓에 대한체육회 회원종목단체에 가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수백명의 어르신들이 참여한 한 한궁대회의 모습.

12개 이상 시도체육회 가입 등 높은 진입 장벽에 신청조차 못해

세계생활체육연맹 정식종목이 국내선 찬밥… “기존 종목 텃세” 비판

[백세시대=배성호기자]

허광 세계한궁협회장은 지난 2006년 궁도와 투호 등 우리나라 전통 스포츠를 현대적으로 개량해 ‘한궁’을 창시했다. 오십견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전국적으로 보급됐고 현재 한궁을 즐기는 인구는 1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스포츠 강국인 미국, 일본 등에서도 한궁을 배워가고 있다. 특히 일본은 진가를 알아보고 2019년 열리는 일본장애인전국대회에 한궁을 시범종목으로 채택했다. 허광 회장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세계생활체육연맹(TAFISA)으로부터 ‘생활체육 선구자상’(Pioneer of Sports for All)을 받았다. 

세계가 인정하고 100만이 넘는 동호인을 가진 한궁이지만 정작 국내 체육계에서는 여전히 찬밥신세다.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 때문에 대한체육회의 회원종목단체로 가입 신청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궁은 현재 매년 전국 시군구별로 수백개의 대회가 개최되는 등 남녀노소, 장애인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즐기는 국민 생활체육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궁은 대한체육회 회원종목단체로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체육회에 정회원으로 가입하면 정부에서 지원하는 각종 예산을 통해 한궁을 육성하고 세계화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지만 이 통로가 차단 된 것이다.

한궁이 회원종목단체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먼저 높은 진입 장벽에 있다. 2016년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되면서 각종 규약과 규정을 재정비했는데 이 과정에서 요건을 높여 현실적으로 신규 스포츠의 체육회 가입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가입·탈퇴 규정에 따르면 정회원 종목 협회는 12개 이상의 시·도 종목단체가 해당 시·도체육회에 가입한 상태여야 한다. 준회원은 9개, 인정단체의 경우 6개 시·도체육회 가입을 조건으로 한다. 여기서 시·도체육회란 서울시 체육회, 경기도 체육회 등 17개 시·도 단위 체육회를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또 발생한다. 시·도체육회 역시 비슷한 규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경기도체육회에 가입하려면 여러 조항이 있지만 도내 31개 시·군 중 21개 이상에 가입이 돼 있어야 도체육회 입성의 기본조건을 갖춘다.

그렇다고 해서 시·군·구체육회 가입이 쉬운 것도 아니다. 자치구별 체육회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최소 6개의 동호회와 동호회별 20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구성원 중 80% 이상이 해당 구민으로 이뤄져야 하고, 회장 또는 사무장은 구민이어야 한다. 

이런 높은 조건 때문에 기존 단체들 중 일부는 자격을 상실했다. 

 2015년까지 대한체육회 회원이었던 걷기·국무도·낚시·모터사이클·무에타이·합기도·밸리댄스·삼보·생활무용·오리엔티어링·용무도·이종격투기·자동차경주·전통선술·종합무술·체스·폴로·프리테니스·플로어볼·우드볼·e스포츠·브리지 등 22개 종목 단체는 현재 회원 자격을 상실한 상태다.

여기에 또 한가지 난관이 존재한다. 모든 요건을 갖추더라도 시·군·구체육회에 들어가기 위해선 기존 회원단체들로 구성된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여기서 마땅한 이유를 들지않고 거절해도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없다. 대한체육회와 마찬가지로 시·군·구체육회에 가입하기만 해도 지자체의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는데 기존 회원들이 자신들에게 들어갈 몫이 줄어 고의적으로 회원 가입을 방해한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실제로 모 시·군·구체육회에서는 한궁이 까다로운 조건을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도체육회에 가입이 안됐다는 이유로 가입을 반려한 경우도 있다. 전북 군산시 등 일부 지역에서는 보다 못한 대한노인회 지회가 팔을 걷고 나서서 시·군·구체육회 가입을 성공 시키기도 했다.

황긍택 군산시지회장은 “한궁은 노인들이 많이 즐기는데 시·군·구체육회 가입 요건을 똑같이 갖추라고 하는 건 일종의 차별”이라면서 “아무리 노인들에게 유익한 스포츠라고 해도 이런 구조 속에선 성장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해당 체육회 관계자는 “예산 때문이 아니라 가입 조건을 아직 충족하지 못해 반려했을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우리나라 체육계에는 한궁 등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말 그대로 생활체육을 깔보는 태도가 깔려 있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 스포츠는 국제올림픽위원회가 관리하는 엘리트 종목과 세계생활체육연맹이 주도하는 생활체육으로 양분돼 있다. 

세계생활체육연맹(TAFISA)은 생활체육을 ‘엘리트체육을 제외한, 건강과 행복을 위해 모든 개인이 나이, 성별, 장애, 신체조건 등에 차별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스포츠’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생활체육이라는 것.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엘리트종목을 일반인이 하는 것을 생활체육으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엘리트종목, 즉 올림픽 출전 종목은 체육회 가입조건이 덜 까다로운 편이다. 정회원의 경우 12개 이상 시도체육회에 가입해야 하지만 올림픽종목은 절반인 6개 이상이면 가입신청이 가능하다. 시·도체육회와 시·군·구체육회 역시 완화된 조건을 적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궁을 비롯해 국민 건강을 향상시키는 신규 스포츠가 등장해도 크지 못하고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허광 회장은 “현재 체육회 가입 방식은 기존 단체들만 계속 혜택을 보는 구조”라면서 “국민 건강을 위해선 체육회가 엘리트 체육인 육성보다 국민 생활체육 활성화에 좀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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