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정희
시인 박정희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01.26 10:58
  • 호수 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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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이념을 표방하는 출판사 ‘기파랑’이 최근 펴낸 ‘박정희 전집’을 백세시대 편집부에 보내왔다. 총 9권이다. 이 중 8권의 책 제목이 중복돼 있다. ‘우리 민족의 나갈 길’, ‘국가와 혁명과 나’, ‘민족의 저력’, ‘민족중흥의 길’ 등 네 권에 각각 영인, 평설의 소제목을 붙여 두 권씩 만들었다. 영인은 박정희 대통령(1917~1979년)이 쓴 원본이고 평설은 남정욱 숭실대 겸임교수가 한자를 우리말로 옮기고 문장을 읽기 쉽게 손 본 것이다. 박정희가 생전에 네 권의 저서를 남겼다는 사실도 전집을 보고서야 처음 알았다.

나머지 한권은 ‘박정희 시집’이다. 박정희의 현존하는 시작품은 모두 30편이며 이중 상당수는 육필 원고까지 보관돼 있다. 10대 시절 일제 치하에 쓴 두 편의 시를 시작으로 타계 전까지 꾸준하게 작품을 써왔다. 그가 평생 시 장르를 가까이 해왔다는 뜻이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 너는 세계에 명산!/아! 네 몸은 아름답고 삼엄함으로/천하에 이름을 떨치는데/다 같은 삼천리 강산에 사는 우리들은/이같이 헐벗으니 과연 너에 대하여 머리를 들 수 없다/금강산아, 우리도 분투하야/너와 함께 천하에 찬란하게!”

시의 제목은 ‘금강산’이다. 박정희가 17세 때 대구사범 시절 금강산 수학여행을 가서 쓴 시이다. 절경을 눈앞에 두고 식민지 치하의 가난을 탓하는 조숙한 모습이 엿보인다.
박정희는 굳게 다문 입, 근엄한 표정으로 강렬하게 각인된 이미지 탓에 그의 예술적 소질과 시적 감수성을 가늠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는 틈나는 대로 풍금 앞에서 노래하고 작사도 하는 창조‧예술적 인간이었다. 그가 작사‧작곡한 ‘새마을 노래’ (1972~73)가 이를 증명한다.

시집에는 6‧25전쟁 시기인 1951년 대한민국 장교로서 쓴 작품도 있고, 5‧16혁명 거사 직전의 소회와 우국충정을 담은 애국시도 있다. 그렇지만 가장 많은 시는 아내 육영수와의 사랑을 담은 애정 시이다. 신혼생활부터 피격 당해 유명을 달리한 후의 그리운 심경을 표현한 것들로 16편에 달한다.

박정희는 9사단 참모장으로 강릉 남쪽 명주군에 주둔하고 있을 때 연락병을 보내 대구 시내에서 혼자 집을 지키던 아내를 데려왔다. 전시 상황이라 육영수는 군복을 입고 군용 앰뷸런스를 탔다. 그 무렵 ‘춘삼월 소묘’(1951년)란 시를 썼다. 일종의 ‘허니문 보고서’이다.

“벚꽃은 지고 갈매기 너울너울/거울 같은 호수에 나룻배 하나/경포대 난간에 기대인 나와 영(英)//노송은 정정 정자는 우뚝/복숭아꽃 수를 놓아 그림이고야/여기가 경포대냐 고인도 찾더라니//거기가 동해냐 여기가 경포대냐/백사장 푸른 솔밭 갈매기 날으도다/춘삼월 긴긴 날에 때 가는 줄 모르도다/바람은 솔솔 호수는 잔잔/저 건너 백사장에 갈매기떼 회롱하네/우리도 노를 저으며 누벼 볼거나.”  

박정희는 1974년 8월 15일, 자신을 겨냥한 총탄에 맞고 돌연 타계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절절하게 토로했다. 하루에도 두 편씩 홀로된 남편의 속울음을 시로 남겼다. 아래의 시는 그해 9월 4일에 쓴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이다.

“이제는 슬퍼하지 않겠다고/몇 번이고 다짐했건만/문득 떠오르는 당신의 영상/그 우아한 모습/그 다정한 목소리/그 온화한 미소/백목련처럼 청아한 기품//이제는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잊어버리려고 하면 더욱 더/잊혀지지 않는 당신의 모습/…당신이 앉아 있던 의자/당신이 만지던 물건/당신이 입던 의복/당신이 신던 신발/당신이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이거 보세요” “어디 계세요”/평생을 두고 나에게/“여보”하고 한 번 부르지 못하던/결혼하던 그날부터 이십사 년간/하루같이/정숙하고도 상냥한 아내로서/간직하여 온 현모양처의 덕을/어찌 잊으리. 어찌 잊을 수가 있으리.”

박정희 탄생 100주년(1917~2017)을 기념해 펴낸 ‘박정희 전집’에서 뜻밖에도 ‘시인 박정희’를 발견한 순간 그가 우리에게 남긴 공과 과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박정희는 중국을 비롯 전 세계 개발도상국가들이 끊임없이 벤치마킹하는 새마을운동의 창시자이다. 그가 이끈 대한민국은 2차 대전 후 독립한 국가 중 유일하게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 그는 가난을 추방했고 국민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 결과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지리멸렬한 역사를 뒤로 하고 조국근대화와 굳건한 안보를 달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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