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게 모르게 ‘크기’로 많은 것을 구분하며 살아간다. 큰 것은 성공의 의미이자 좋은 것이라는 우리 사회의 풍토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병원도 큰 병원이 무조건 좋은 병원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큰 병원이 좋은 병원일까?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선 먼저 병원에 대한 기본 정보를 익힐 필요가 있다. 의료기관은 의원,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의 4단계로 구분된다. 이를 더 단순화하면 의원급 의료기관을 1단계로,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을 포함한 병원급 의료기관을 2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의원은 주로 입원하지 않고 통원치료를 하는 외래환자를, 병원은 주로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의료행위를 하는 곳이다.
즉, 의원은 외래가 중심이기 때문에 입원시설을 갖추지 않은 곳이 대부분인데 반해 병원은 법적으로 입원실에 침대가 최소 30개가 있어야 병원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의료법 제3조에 따르면, 종합병원은 최소 100병상이 있어야 하고 최고 7개 전문과목과 전속 전문의가 있어야 한다.
300병상 이상의 대형 종합병원을 운영하고자 하면 요건이 더 까다로워지는데 최소 9개 전문과목과 전속 전문의가 필요하다. 상급종합병원은 종합병원 중에서 중증질환에 대해 난이도가 높은 의료행위를 전문적으로 하는 종합병원이다. 대부분의 대학병원이 여기에 포함되며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에 약 40여 개의 상급종합병원이 있다.
의료기관도 가장 기본이 되는 분류기준은 역시 ‘크기’에 따른 것으로, 크기가 클수록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은 높다. 지금까지의 정보만으로 판단한다면 큰 병원은 좋은 병원이라는 답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질문을 바꿔보자. 큰 병원이 좋은 병원이라고 전제할 때, 모든 환자들이 큰 병원에 가야 하는 것일까? 이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질문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흔하게 앓는 외래 질환은 감기, 기관지염, 위염 등 대부분 흔하지만 중하지 않은 질환들이다. 이러한 질환을 진단·치료하는 데에는 간단한 시설과 장비만 있으면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질환으로 큰 대학병원에 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위중하지 않은 질환일 때에는 동네의원을 찾으면 된다. 만약 동네의원에서 진료를 받고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을 경우 병원급 의료기관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의원급을 1차 의료기관으로, 병원이나 종합병원을 2차 의료기관으로, 대학병원과 같은 상급종합병원을 3차 의료기관으로 두는 단계를 보건의료전달체계라 한다. 몸이 아플 때 질병의 정도에 따라 1차에서 2차로, 그리고 다시 2차에서 3차 의료기관을 찾는 것이 권고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와 같은 보건의료전달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몸이 아플 때 자신의 의사에 따라 1차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바로 3차 의료기관에서 진료받는 경우도 많다. 3차 의료기관 외래에서도 감기 환자나 경증 환자를 진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3차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을 경우 진료비를 더 내야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 현실상 그 액수가 크게 차이 나지 않기 때문에 보건의료전달체계는 무시될 때가 많다.
3차 의료기관의 문제는 환자가 많아 바쁘기 때문에 환자의 건강상태를 자세히 체크해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대기 환자로 인해 진료 시간은 보통 5~10분이면 끝나버린다. 무엇보다 대화를 통한 환자의 상태 점검보다는 X-레이 검사나 피검사 등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큰 병원은 좋은 병원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감기에 걸린 내가, 기관지염에 걸린 당신이 가기에 적합한 병원이 큰 병원은 아니다. 처음 만나는 대학병원 교수님보다 잔병치레 많은 나를 잘 알고 있는 동네의원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는 좋은 의사가 아닐까?
출처: 대한의사협회‧대한의학회 발행 ‘굿닥터스’(맥스Med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