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사, 나쁜 의사
좋은 의사, 나쁜 의사
  • 고병수 탑동365일의원 (한국일차보건 의료학회 회장)
  • 승인 2018.02.09 11:27
  • 호수 6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의사협회 명의들이 알려주는 건강정보 [49]

의사로 사는 것도 힘든 시대다. 서점에 가보니 ‘의사를 믿지 마라’, ‘병원에 가지마라’ 등 병원과 의사를 불신하는 책들이 넘쳐난다. 병원에 가서 오히려 병이 깊어진다는 ‘말도 안 되는 내용’도 있다. ‘의사불신 시대’에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인가?’ 의사로 살아온 내게 질문을 던져본다. 

의사가 생각하는 좋은 의사와 환자가 생각하는 좋은 의사 사이에는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병을 잘 고치는 의사’가 좋은 의사라고 생각하는 건 의사들일까, 아니면 환자들일까?

병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좋은 의사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에 따르면 실력 있는 의사가 1위를 차지한 적은 별로 없으며 대부분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의사’를 좋은 의사라 손꼽는다. 그 이유는 환자들은 항상 병원에서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의사가 자신의 병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며, 이로 인해 환자는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환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의사는 좋은 의사일 수 없다. 따라서 환자의 병에 대해 잘 이야기해 주는 의사, 친절한 의사, 항생제 덜 쓰는 의사 등이 환자들이 꼽는 좋은 의사의 기준이다.

하지만 의사인 내가 생각할 때 좋은 의사란, 환자의 건강을 책임져 주는 의사다. 환자가 이런 의사를 만난다는 것은 당연한 일 같지만 정작 쉽지 않은 일이다. 

가벼운 질환인 경우 부담이 적겠지만 생명을 건 중한 병에 걸렸을 때 어떤 의사를 만나 어떻게 치료받느냐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의사가 환자의 건강을 책임질 실력과 마음자세를 가진 사람인지에 따라 환자의 건강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의료분쟁이 많은 시대에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책임을 뒤집어써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다 보니 의사 역시 환자에 대해 책임감을 갖지 않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 되어버렸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손을 들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이런 세상에서 환자의 건강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끝까지 책임지려고 노력하는 좋은 의사를 만난다면 그것은 분명 행운이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건강을 책임져주려는 좋은 의사들이 많이 있다. 한국전쟁 전후, 부산에서 어려운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하며 환자들의 먹을 것까지 챙겨주었던 장기려 선생이 그러했고, 아프리카 수단에서 원주민들을 진료하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태석 신부 역시 환자들의 건강을 끝까지 책임지려 했던 의사였다. 소외된 외국인 노동자들을 진료하는 의사들, 도시 빈민들을 위해 일하는 의사들까지 세상에는 좋은 의사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특별한 현장에서 봉사하는 의사들만이 좋은 의사는 아니다. 우리 주위의 병원에도 좋은 의사들은 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의 환자를 진료하며 힘들 때에도 환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의사, 간혹 의사를 공격하는 환자를 만나도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최선을 다하는 의사들이 좋은 의사다.

이렇게 좋은 의사를 만나면 환자는 의사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데, 의사와 환자 간의 관계를 흔히 라포(Rapport)라고 한다. 이 말은 서로 간의 신뢰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라포가 형성되면 환자가 의사를 믿고 따라오기 때문에 더 좋은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

좋은 의사가 있다면 반대로 나쁜 의사도 있을 것이다. 돈만을 생각하며 환자를 치료하고, 환자를 이용해 다른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의사들이 소위 말해 나쁜 의사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 중 이런 악당들은 없다고 믿고 있다. 

환자들이여, 불신을 버리고 의사를, 병원을 믿어 보자. 그러면 삶의 질이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대한의사협회‧대한의학회 발행 ‘굿닥터스’(맥스Media)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