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부를 노래
노인이 부를 노래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 승인 2018.02.09 11:37
  • 호수 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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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게 나이 들어 가고

칭찬에 인색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요즘 젊은이라도

노인을 닮고 싶어할 것

세대마다 개인마다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 한때 나훈아, 남진의 노래를 부르고 이미자와 패티김의 노래를 읊조리며 지냈던 세월이 주마등같다. 물론 어른들의 노래가 있다면 아이들의 노래도 있다. 

요즘이야 아이돌의 노래를 부르며 어깻죽지가 문어처럼 일렁이게 춤을 추는 아이들이 많지만, 30~40년 전만해도 어린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중 이런 가사가 있다. ‘나는 나는 될 터이다. 선생님/음악가가 될 터이다. 오냐오냐 나도 나도 선생님/음악가가 될 터이다.’ 이 가사를 보며 따라 부를 분이 꽤 계실 것이다. 뭐든 꿈을 꾸고 그것이 되기를 다짐하며 선생님의 풍금소리에 따라 이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런데 ‘나는 나는 될 터이다. ○○가 될 터이다’에서 ○○는 대부분 직업이 들어가거나 자격이 들어가기 쉽다. 여기 이 ○○에 ‘노인’을 넣어보면 어떨까? 영 싱겁고 재미없는 가사가 될까? 모두가 걱정하며 가능하면 미루고 싶은 것이 될까?

어찌 보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요즘 말에 ‘위험하고(dangerous), 까다롭고(difficult), 지저분한(dirty)’ 것을 줄여 3D라는 말을 쓴다. 청춘들이 보기에 노인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 위험하고, 꼼꼼하다보니 까다롭고, 열심히 씻어도 냄새가 나니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그래서 그런지 ‘워너비(Wanna Be:되고 싶은)’ 목록에 ‘노인’을 쓴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공자님 말씀대로라면 노인은 하늘의 뜻을 알고(知天命) 귀도 순해지며(耳順) 마음을 따라 말하고 행동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종심(從心)이 지나도록 사는 이들인데 왜 따르려는 자가 없는 걸까? 지천명, 이순, 종심을 지날 정도면 어떤 성인보다 믿을 만한 멘토요 삶의 스승이고 요즘말로 ‘리스펙트(respect:존경)’일 텐데 말이다.

젊은이들이 노인이 되고자 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이 있을 것도 같은데, 그건 아마 이 세 가지 때문일 것이다. 

첫째, 노인들의 무한반복 재생기억이다.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월남전, 보릿고개 등은 노년들의 영원한 기억이자 고통의 역사흔적들이다. 이 과정을 거쳐서 온 지금의 노년들에게 현재를 평가하라고 말하면 지금은 보다 나은 시대, 살만한 시대, 행복에 겨운 세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고, 요즘 젊은이들의 통증을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래서인가 젊은이들도 청춘을 이해해주고 보듬어주려는 노년들에게 대개 기쁨을 보이고 감사를 표하는 반면, 과거의 끈을 길게 잡고 ‘요즘 것’들을 평가하고 이를 무한 반복하는 노년들에 대해 심한 댓글을 달기도 한다. 

둘째, 우리주의(We-ism)와 나주의(Me-ism)의 차이로 나타나는 세대 특성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생각했던 세대의 집단주의와 가족주의는 지속적인 개입과 관여의 습성을 남겼다.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함께 해야 살아남고 그래야 가족이라 믿는 세대의 간섭에너지가 젊은 세대들에게는 벅차다. 

셋째, 비평과 평가를 위한 지적의 방식 차이다. 생존과 경쟁의 현대사를 살아온 노년들에게 빠른 지적과 정확한 평가는 필수적이자 매우 적합한 방식이었다. 반면 매너와 우회적 진단을 통해 비난을 최소화하고 칭찬과 격려를 최대화하며 성장한 젊은 세대들에게 노년세대의 진단과 평가는 매우 낯설 뿐 아니라 치명적이거나 최소한 고통스럽다. 수직적 문화와 수평적 문화의 거대한 충돌이리라. 문화가 다르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인류라는 것인데, 우리는 서로에게 알 수 없는 언어를 구사하는 셈이다. 

사실 노년들이 생각해보아도, 그까짓 것 나이 가만히만 있어도 먹고, 노인 그거 가만히만 있어도 되는 주제를 뭘 굳이 ‘되려고’하나 싶을 수 있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이유들이 무엇이건 간에 또 어떤 이유가 더 있건 간에 모든 세대가 알아야 할 것은 노인은 모든 세대의 미래라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멋있어 보이고 할머니처럼 늙고 싶고 길거리를 걸어가는 노인들처럼 건강하고 활기차며 매너 있고 깔끔한 게 노년이라면 동요는 바뀔 것이다. 그 어떤 직업보다, 그 어떤 유명인보다 유아부터 중년까지 모두가 늙음을 기대하며 늙음을 꿈꾸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노인인 우리들은 어떤 노래를 불러야할까? 이런 노래가사라면 어떨까? ‘나는 나는 될 터이다. ○○한 노인이 될 것이다~!!’

반복이 아니라 감탄을 쏟아내는, 나주의(Me-ism)의 다름을 인정하는, 우아한 비판과 아낌없는 칭찬을 기꺼이 선택하는 노인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마치 아리랑을 부르듯, 노인의 노래로 불러보면 어떨까? 우리도 더 늙은 노인이 된 멋진 나를 상상하며 불러보면 더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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