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 신순범 한국정치전략연구소 이사장
[인물포커스] 신순범 한국정치전략연구소 이사장
  • 정재수
  • 승인 2008.02.22 17: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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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전략 연구소 열고, 선거전략 9단 노하우 전수한다

공천권자에게 줄서지 않고 정성 다하면, 국민이 줄 선다
날 풀린 뒤 장학재단 후원금 모금 거리공연, 책 판매한다


그의 이름은 요즘 언론의 정치면에서 찾기 어렵다. 정계를 떠난 지 벌써 10여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한때 제1야당의 사무총장으로 정계를 풍미한 적이 있다는 것은 한국정치에 대해 웬만큼 관심이 있다면 안다. 내리 4선을 한 국회의원으로 16년 동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주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정치, 혹은 선거의 9단으로 후진양성을 하며 장학사업에 나서고 있는 신 이사장을 서대문 한국정치전략연구원에서 만났다.

신 이사장이 처음 금배지를 단 것은 우리 헌정사상 몇 안 되는 극적인 사건에 속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고나 할까. 당선 불가능한 선거를 예상을 깨고 뒤집은 30년 전의 선거 경험은 지금도 신순범 이사장에게 있어서나 정치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신 이사장은 선거를 치러 공직에 나가는 정치지망생(국회의원, 자치단체장, 광역시도의원, 기초단체의원, 교육감, 단체장 등)에게 비결을 전수해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라면장사를 하며 내공을 쌓고 불가능다는 선거를 역전시킨 노하우를 비롯해서 내리 네 번의 선거에서 1등으로 당선하는 비법을 1:1로 가르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것도 역전의 내공을 쌓던 라면장사 가게 터가 내려다보이는 오피스텔(서대문 유원 골든타워)에 사무실을 마련하고서다. 

신 이사장은 그 첫 번째의 당선을 어제 일처럼 여겼다. 옛 추억이 아니라 현재도 계속하고 있는 지역구관리프로그램처럼 오래된 경리장부, 인맥관리용 대학노트를 보여주었다. 깨알같이 적어놓은 사람들 이름에는 연하장을 보낸 날짜, 행사에 참석한 날짜 등이 빼곡 적혀 있었다.

그렇게 기록하고 남보다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안 된다는 선거에서 통쾌한 역전승을 거둔 것이었다.

어느 정도의 악조건이었을까. 그는 여수에서 70리 떨어진 어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지역구 내에 같은 성씨(거창신씨)는 17가구 뿐이어서 씨족 일문의 도움도 기대할 형편이 못됐다. 공무원들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1981년,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서울 서대문 충정로 차고에서 라면장사를 해 모은 450만원과 코리아 헤럴드 영어웅변대회에서 특상을 받은 수상경력, 그리고 그동안 꾸준히 다져놓은 지역 표밭뿐이었다.

“민정당이 여당이고, 야당은 1중대니 2중대니 하던 민한당이었어요. 공천을 신청하려고 했더니 낙천 받을 가망성이 없다고 해요. 그때 야당지도자였던 김상현 의원이 공천신청을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신순범 이사장은 그래서 당선하기 좋은 민한당 공천을 포기하고 이름도 생소한 안민당 후보로 출마했다. 그런데 그의 선거구는 265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고, 그중 4개 면이 도서부락으로 돼 있었다. 돈이 없고, 정당 이름도 생소한 안민당 후보로서는 가망이 없었다.

그런데 개표 결과 여당후보를 7,624표 차로 제치고 그가 1등으로 당선이 됐다. 이때의 기적을 정치 후학들에게 전수한다는 것이 ‘한국정치전략연구원’을 개설한 이유다.

한 시대를 풍미한 경륜을 전수하기 위해 팔을 걷은 그의 뜻이 국민의 복리와 국가발전에 이바지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어르신들 중, 혹 관심이 있을 것 같아 정치지망생들에게 1:1로 전수해 주는 비법 몇 가지를 귀띰해 달라고 했다.

“첫째는 돈을 내거나 줄을 서서 공천 받으려는 노력보다는 지역민들에게 정성을 쏟아서 공천을 받도록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요즘 정계를 보면 줄을 잘 서야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성의 있게 지역민들과 교감한다면 선거에서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정성을 들이는 법으로, 예를 들어 나는 붓글씨 1만 7000장을 써서 해마다 4000장의 연하장을 보냈습니다. 돈이 아니라 내 품을 들인 것입니다.”

연설을 잘하는 방법도 신 이사장이 전수하는 비법 중의 하나.

“연설은 외워야 잘할 수 있어요. 단문으로 100~200개 정도를 외우고 있으면 천하의 명 연설가가 될 수 있어요.”

신 이사장 그러면서 1987년의 대통령선거 당시 평민당 김대중 후보 선거연설원으로 뛰던 때의 경험도 들려주었다. 유세 때에 대통령후보의 도착이 지연되는 경우, 청중의 돌아가지 않게 연설하는데, 그때 진가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그 일과성 연설을 어제했던 것처럼 고스란히 외워 보여주었다.

파산하여 라면장사를 할 때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코리아헤럴드 주최 영어웅변대회에서 특상을 받은 것도 암기의 힘이었다. 40대 중반을 넘은 그가 특상을 받은 것은 원어민의 발음을 녹음해 1500회 이상 따라하며 외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비법은 지역구에 입소문이 퍼질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아, 누구누구는 대단하더라, 하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정치를 하려면 거기에 미쳐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국민이 그 사람에게 줄을 서고, 공천도 받고 뜻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지역민 속에 들어가 인정받는 비법을 3개월 정도 압축적으로 공부한다면 기술적인 면에서는 마스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아날로그 시대를 산 정치인으로 디지털시대의 선거운동을 잘할 수 있는지 묻자 지금시대에 맞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다고 했다. 강의료에 대해 묻자, 신 이사장은 “형편에 따라 받아야지요”라고 했다. 지망생 중에는 명문거족, 거부, 평범한 시민도 있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신 이사장의 최근 행보는 어떨까. 지난 대선 때 조순형 의원과 뜻을 같이 했으나 후보사퇴 뒤 함께 물러나 지금은 한국정치전략연구원 일에 전념하고 있다. 또 각 사회단체, 지자체에서 특강 형식으로 강의도 하고 있다. 이제 트레이드마크가 된 장학사업도 물론 계속하고 있다. 지난 1991년 장남 결혼식 축의금으로 설립한 (재)만광장학회와 거리공연을 통해 모은 돈으로 장학생과 시한부 생명에 대한 콩팥이식수술을 후원해오고 있다.

장학회후원금 모금을 위해 거리공연을 한 것은 동아일보 등 주요 언론에서도 주목하여 대서특필했다. 신 이사장 자신이 직접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노래 부른 것만이 아니라 이상벽과 같은 방송인과 가수들이 찬조공연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장학금 혜택을 받고 있다. 또 콩팥 이식을 지원해 10여 명의 목슴을 구해 새 삶을 찾게 해주기도 했다. 신 이사장은 “장학재단에 필요한 후원금 모금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허리를 굽힙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러한 그의 정치철학, 선거 경험의 일부가 자서전 ‘꿈, 깡, 끼, 꾀, 끈에 도전하라’는 책에 수록돼 있다. 신 이사장은 거리공연을 하면서 이 책을 판매해 수익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적립하고 있다.  

스트레스가 많은 세월을 산 정치인으로 건강관리는 어떻게 할까. 

“걷는 게 좋습니다. 나는 1만 5000걸음을 걷습니다.”

신 이사장은 걷는 운동을 권장했다. 운동을 하지 않는 경우 평생 6억번 뛰는데, 걷게 되면 뇌가 더 많이 뛰는 것처럼 인식하고 그러면 노화도 억제하고 건강도 좋다고 한다. 그는 또 운동 삼아 선(禪)을 한다며 직접 돗자리를 펴고 결가부좌를 틀어 잠시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다. 70대 중반을 넘은 신 이사장의 몸이 참 유연해 보였다.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감상에 젖기도 한 그는 결가부좌를 해보였던 돗자리 위에 장구를 꺼내놓고 앉아 잠시 장구연주 솜씨를 보여주었다. 김덕수로부터 배웠다고 했다.

정계 원로로 후학을 양성하며 젊어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신순범 이사장은...

1933년생, 동국대정외과 졸업
11대, 12대, 13대, 14대 국회의원
평민당 사무총장
민주당최고위원(부총재)
대통령선거유세위원장
(재)만광장학회 이사장(현)
한국잠재능력개발연구원 이사장(현)
한국정치전략연구원이사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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愼 鏞 基 2010-07-10 04:10:13
한번 만나뵙고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