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어떤 성호
발길 흔적 빗질 흔적 없는 옥상에
밤새 누가 성호를 그려놓았을까
“네 마음에 미약한 온기만 있어도
누군가의 언 가슴 녹일 수 있다”는
선명한 메시지
김석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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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저렇게 저곳만 눈이 녹았을까.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신비롭다. 사람의 손으로 저렇게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자연의 놀라운 힘과 능력을 다시 한 번 더 체감한다. 밤사이 외계인이라도 와서 남겨놓고 간 흔적은 아닐 테지.
눈이 녹은 곳은 수많은 발자국들이 지나간 길 같기도 하고, 눈이 녹지 않은 곳은 사람이 사는 지붕 위에 쌓인 눈 같기도 한데, 다른 시선으로 보면 마치 십자가처럼 성호를 긋는 어느 따뜻한 마음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침 일찍 걸어갈 사람을 위해 그 어떤 간절함이 저렇게 깨끗한 눈 위에 작은 골목을 데워놓았는지, 우리는 모르는 그런 작은 온기들이 모여 세상은 조금씩 더 따뜻해지고 좀 더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닐런지. 세상은 몇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같이 굴러가는 것이다.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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