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선비론-“그분은 바로 선비다웠다”
이동희 선비론-“그분은 바로 선비다웠다”
  • super
  • 승인 2006.08.2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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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은 선조 때 임진왜란을 겪은 재상으로 강직하면서도 요샛말로 유머가 풍부하신 분이었다.

 

그분이 비변사(備邊司)라는 오늘날의 국방 안보 회의를 하는데 언제나 지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사대부들이 그 지각을 심각하게 추궁했다고 한다. “국가 대사를 심의하는데 어찌 경은 이렇게 늘 늦게 등천하는 거요 ”


그때 백사는 웃으면서 변명하기를 “미안합니다. 오다가 길거리에서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었습니다. 까까머리 중하고 실속 없는 내시가 서로를 붙들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내시는 중의 머리털을 휘어잡고, 중은 내시의 거시기를 움켜잡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싸움이 끝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니 그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대답 속에는 심각한 비판과 반성을 촉구하는 뜻이 있었다.

 

흔히 선비의 토론에는 실속 없는 공리공론(空理空論)뿐이 아니었던가. 참으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효용성과 실질적인 정책은 없고 그저 성리학(性理學)적 원칙론만 따지고 시간을 소비하고 있지나 않았던가. 그런 비판을 그는 선비답게 경고했다고 한다.

 

 역시 그분도 60세가 넘어 은퇴하면서도 국왕에게 원로다운 직간(直諫)을 해 함경도로 유배 돼 돌아가신 의인(義人)이었다.


이러한 선비의 문화와 분위기 그리고 멋이 오늘날엔 아쉽다. 이번 선거에서 새로 당선된 공인들도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속으로는 강함(外柔內剛), 청빈을 미덕으로 삼아 검소하고 절약함(淸貧儉約),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공인(一貫主義), 지신에겐 공약대로 엄격하되 선거인에겐 후함(薄己厚人)등을 지도자로서 수양해야 한다.


이런 선비의 전통이 우리 몸속엔 이미 수백 년 배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호학(好學)의 지도자가 돼서 배운 학문과 행동을 일치시켜서 학행일치(學行一致)로 공인이념에 강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강한 자는 억누르고 약한 자를 부추겨 주고(抑强扶弱), 공적인 일을 우선하고 사적인 일을 뒤로 하기(公先後私)를 실천해 모든 사람이 공생공존 하는 이상적인 대동사회(大同社會)를 그 선거구에서 이루어 내는 이상주의적 지도자가 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선비문화는 당선자만의 것이 아니다. 낙선자 그리고 유권자에게도 우리 사회속의 영원한 행동지침이다. 21세기 한국선비사회의 리더십이 돼야 할 것이다.

 

그동안 18세기 이래로 우리의 전통은 서구문회와 식민지 강권에 의해서 무너져 왔다. 비굴한 생존만 있었다. 그러나 이제 경제대국이 되고 진정한 우리의 민주주의를 이 땅에 심으려면 우리 모두가 선비의식을 재 발굴하고 현대적으로 뿌리를 내려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5·31선거의 참다운 의미가 돼야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 국민은 수 없이 인재를 뽑는 선거문화 속에서 소위 주권을 행사할 것이다. 그 때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 사회의 양심이요, 지성이다.

 

그리고 엄격한 기준이어서 우리 사회에 생명의 원기(元氣)를 불어 넣는 일종의 사회 통합적 기능을 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아야 될 것이다. 바로 그에겐 공명정대한 사론(士論)이 있고, 사류(士流)의 멋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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