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쇼 뒷이야기
드론 쇼 뒷이야기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03.02 09:34
  • 호수 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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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아들은 콘티작가이다. 영화, CF 등에서 대본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 촬영을 돕는 일을 한다. 촬영감독이 이 그림을 바탕으로 촬영함으로써 작품의 진행속도가 빨라지고 완성도도 높아진다. 미국의 영화·방송은 오래전부터 이 과정을 거쳤지만 한국은 최근에야 도입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 직후 난생 처음 보는 환상적인 드론 쇼의 감흥이 채 식기도 전에 아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자기가 올림픽기 드론 쇼 컷을 그렸다면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내온 것이다. 1년 전 아들은 송승환 감독 측으로부터 드론 쇼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평창 계곡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스노보드 선수들이 계곡 사이 밤하늘을 수놓은 올림픽기를 올려다보는 장면을 그려주었다. 아들은 실제로 방영된 드론 쇼가 자신이 그려준 그림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자기 그림이 채택된 사실도 TV를 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는 얘기도 했다. 개막식은 그만큼 비밀리에 진행됐던 것이다. 

개막식과 폐회식에서 보여준 드론 쇼는 현대 IT 기술의 절정이다. 송승환 감독은 다른 나라의 올림픽 행사를 쭉 보면서 지금껏 드론을 사용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 드론 쇼를 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드론 퍼포먼스를 완벽하게 연출해 2020년 일본 도쿄올림픽의 김을 빼고 싶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송 감독은 우리나라 드론업체를 물색했지만 맡길 만한 곳이 없었다. 100여대 드론을 프로그램 하나로 제어하는 능력을 갖춘 곳을 찾지 못했다. 결국 평창 공식 후원사인 인텔로 결정됐다. 인텔은 반도체 회사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드론 쇼에서도 막강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텔이 구사한 것은 클라우드(군집) 비행기술이다. 인텔은 수년 전부터 특별팀을 만들어 드론 쇼를 준비해왔다. 인텔 드론팀이 공연을 처음 시작한 것이 2015년 10월이다. 최소 3년을 준비한 셈이다. 기획 단계부터 따지면 훨씬 더 오래 됐다. 드론도 직접 개발했다. 드론 이름은 ‘슈팅스타 드론’, 우리말로  ‘별똥별 드론’이다. 드론 하나의 무게가 330그램밖에 안 된다. 

드론의 모든 움직임은 사전에 컴퓨터에 입력된다. 각 드론에는 초정밀 GPS장치를 달아놓았고 고도측정을 위해 기압센서도 장착했다. 준비과정에서는 많은 기술자들이 관여했지만 당일 실제로 드론을 조종한 것은 단 한 사람이었다. 소프트웨어로 모든 걸 준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슈팅스타 드론에는 RGBW LED 광원이 달려 있어 수백 가지의 색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인텔 드론팀도 슈팅스타 드론을 영하 10도, 15도에서 작동해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인텔팀은 평창과 비슷한 환경인 알프스에서 많은 테스트를 거쳤다. 인텔팀이 평창올림픽 전까지 가장 많은 드론을 사용한 것이 300개였다. 개막식에는 1218개의 드론이 동원됐다.

이번 드론 쇼에서 안타까운 사실도 드러났다. 한국도 기본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예산이 부족해 수십대급에서 더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일찍부터 드론에 투자했더라면 평창 하늘을 장식한 드론은 인텔사의 것이 아니라 우리 제품, 우리 기술력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드론 경쟁력은 세계 상위권이었다. 지금은 중국이 압도적으로 1위다. 우리는 따라가기 힘들만큼 처졌다. 규제가 드론의 숨통을 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밤에 드론을 띄울 수가 없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도심 비행도 금지돼 있다. 비행 승인을 신청하려면 온갖 서류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평창에서도 야간에 드론을 못 띄운다는 규제를 풀기 위해 장장 90일을 소비해야 했다. 

정부의 규제가 매번 기술의 발전을 훼방 놓는다면 더 이상 아름다운 드론 쇼는 감상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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