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어떤 음식이든 감사하게 먹어야
[기고]어떤 음식이든 감사하게 먹어야
  • 류성무 경북 김천시
  • 승인 2018.03.02 09:40
  • 호수 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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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어머니가 쌀독에서 며느리와 함께 밥 지을 쌀을 뜨다가 드르륵 소리를 듣고는 쌀독 안을 들여다본다. 아껴 먹음에도 불구하고 쌀이 빨리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는 눈치다. 며느리는 이런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면서 “오늘 저녁은 뭐를 할까요?”라고 묻는다. 1~3세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이 먹을 밥을 짓기에는 부족하기에 묻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시큰둥하게 “콩나물밥을 해야 온 식구가 먹지 않겠냐”라고 답한다. 
풍족해진 현재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 같지만 1960대 전후 우리나라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당시 여성들은 정지(부엌)에서 10명이 넘는 대가족의 식사를 만들었다. 애써 상을 차리고도 겸상을 하지 못한 채 어른들 상에서 남은 밥을 모아서 바가지에 비벼서 먹었다. 
필자의 가족도 비슷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아침밥을 절반만 잡수시고 상을 내놓았다. 어머니는 짐작으로 알고 계셨다. 그날 지인 부친의 회갑 잔치가 있어 초대를 받아 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해 일부러 밥을 남긴 것이다. 
속상한 경험도 있다. 동지섣달 긴긴밤에 식량이 없어 저녁에 나물죽을 먹고 잔 일이 있었다. 배에서 꼬르륵꼬르륵 소리를 들으면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러다 잠결에 숟가락 소리를 들었다. 귀를 기울이니 큰집에서 가져온 제삿밥을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드시고 있었다. 식구들이 깰라 조심스럽게 밥그릇을 긁는 숟가락 소리를 들으면서 언제 나를 깨울까 생각했지만 끝내 빈 그릇 소리를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
다행히 식량이 풍족한 여름에는 인심도 넘쳤다. 방과 후 소 꼴을 뜯으러 갈 때에는 일부러 논이 있는 길로 갔다. 당시 모내기를 하던 어른들이 새참 먹는 제방 둑을 지나가면 이웃 아주머니가 항상 밥을 먹고 가라고 불렀다. 물 묻은 숟가락을 손때 묻은 앞치마에 싹싹 닦아 건네 주면 기다렸다는 듯이 샛밥을 얻어먹었다. 흉년일 때는 이조차도 호사였다. 배가 고파서 허기진 배를 졸라매다 못해 물 한 사발에 간장을 타서 먹기도 하고 들에서 재배하는 풋녹두, 양대, 목하다래 등으로 허기를 면하기도 했다. 
얼마 전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이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말 그대로 나라를 위해, 올림픽 성공을 위해 아무 댓가도 바라지 않고 찾은 사람들인데 형편없는 수준의 급식을 내놓은 게 화근이었다. 필자가 어렸을 때와 비교하면 감지덕지일 정도로 진수성찬이었지만 현재 기준에서는 한참 모자란 식단이었던 것이다. 
현재 청년들에게 음식투정 하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다만 부당한 처우에는 당당하게 항의를 하되 주어진 음식은 감사하며 먹었으면 한다. 그 음식도 못 먹어 고생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많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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