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이빨
노인과 이빨
  • 정재수
  • 승인 2008.02.2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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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욱 언론인·세종대 석좌교수

미국 동부의 버몬트주에서는 여성들이 틀니를 끼려면 문서로 된 남편의 허가서가 필요하다고 한다. 작년 8월 영국의 <더타임즈>지가 보도한 ‘세계에서 가장 이상한 법률 25개’ 중 하나로 소개된 이야기이다.

선진국 미국에 왜 그런 황당한 법률이 있는지 자세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짐작컨대 틀니를 시술하려면 우선 충치로 망가진 이빨을 뽑아야 하므로 다른 위험한 수술의 경우처럼 남편의 동의를 얻도록 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 만큼 구강위생을 중요시한다는 뜻이므로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요즘은 임플란트가 일반화되어 보통의 틀니보다는 편리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임플란트는 한 개 당 최소한 1백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 저소득층에는 대단한 부담이 된다.

뿐만 아니라 설사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턱뼈가 튼튼치 않은 사람은 나중의 부작용을 우려해서 임플란트 대신 재래식 틀니를 애용한다. 치과의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임플란트를 여러 개 하는 경우 경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임플란트와 틀니를 동시에 시술하는 방법, 즉 임플란트는 간격을 두고 최소한으로 하되 그 사이에는 틀니를 끼우는 이른바 ‘실버웰빙 임플란트’도 유행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경우도 시술비는 만만치 않아 저소득층에게는 역시 큰 부담이다. 이 때문에 저소득층은 돈이 적게 드는 틀니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틀니조차 빈곤층에게는 적지 않은 경제적 부담이 된다. 이로 인해 이빨이 빠진 채 그냥 지내는 빈곤층 노인들이 많다. 얼마 전 TV에 소개된 중앙아시아 어느 나라의 고려인 할머니는 이빨이 다 빠져 음식물을 씹지 못하고 잇몸으로 우물거려서 삼켜 먹기 때문에 소화가 제대로 안되어 건강에 이상을 일으킨 안쓰러운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 현지를 방문한 한국의 무료 의료진이 그 할머니에게 틀니를 만들어 끼어주자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틀니를 끼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노인은 중앙아시아뿐 아니라 국내에도 많다. 특히 시골에 가보면 그런 노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저소득층에게는 전체틀니는 말할 것도 없고 부분틀니도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그래서 작년 연말 가난한 노년층 돌보기에 나선 중견가수 장미화의 미담이 시중의 화제가 되었다. 장미화는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개최된 연말디너쇼 수익금으로 2명의 독거노인에게 틀니를 선물했다. 장미화는 작년뿐 아니라 재작년 연말에도 같은 선행을 했다. 

이빨이 빠진 노인들이 많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노인복지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이다. 한국의 노인복지 수준은 서양 선진국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여서 노인들의 구강위생 안전망 역시 초보단계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틀니문제만은 해결이 시급하다. 세상에 가장 보기가 안쓰러운 것이 이빨이 빠지고도 돈이 없어 그냥 지내는 노인들이다. 영국 프랑스를 포함한 많은 선진국들은 틀니를 포함한 대부분의 치아진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독일에서는 가입자의 선택에 따른다고 한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틀니를 포함, 치아치료에 건강보험 비급여의 경우가 너무도 많다.

구강위생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치과진료를 받을 때 보험금 급여가 적고 개인부담이 많다는 사실은 건강보험의 기본취지에도 맞지 않는 모순이다.

그런데 2002년부터 정부에서는 70세 이상의 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자 가운데 이빨이 없는 사람들에게 연간 136억원을 들여 틀니를 무료로 시술해왔다. 시술대상자는 일선 보건소에서 선정, 지정 치과병원에 의뢰하는데 전부틀니는 1인당 120만원, 부분틀니는 190만원까지라 한다. 그러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불과 9천명으로, 이빨이 많이 나빠지기 시작하는 65세 이상의 저소득 노인층을 기준으로 보면 1%에도 훨씬 못 미치는 인원이다.

다행히 이명박 차기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중 65세 이상의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틀니를 국가에서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새 정부는 내년부터 기초생활보호대상자 9만명, 2011년 이후에는 차상위계층 22만명을 포함한 총 31만6천명에게 틀니를 제공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필요한 연평균 예산 269억원은 국고에서 충당할 계획이라 한다.

이 숫자는 전체 노인층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바람직한 구강위생 안전망의 구축은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다. 우선 치과진료에 있어서 건강보험 적용을 넓히는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틀니에 대한 건강보험급여를 위해 장경수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이 제안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은 반드시 국회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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