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벙커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 전… 일제 때 강제로 끌려가 유골이 돼 돌아온 사람들
서울시립미술관 벙커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 전… 일제 때 강제로 끌려가 유골이 돼 돌아온 사람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3.09 13:27
  • 호수 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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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돼 끝내 이국 땅에 묻혔다가 유해로 돌아온 115위를 기리는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 벙커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홋카이도 강제징용 희생자의 유해를 모시고 돌아오는 유가족의 모습을 담은 손승현 작가의 사진 작품.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돼 끝내 이국 땅에 묻혔다가 유해로 돌아온 115위를 기리는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 벙커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홋카이도 강제징용 희생자의 유해를 모시고 돌아오는 유가족의 모습을 담은 손승현 작가의 사진 작품.

3‧1절 99주년 기념전… 일 홋카이도 징용 한인들 다룬 다큐 영상 눈길

희생자 유골 발굴과정 담은 영상도…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 사진 ‘뭉클’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충북 음성군 출신인 조상찬 옹(95)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 시절 대부분의 소시민들이 그랬듯 월사금(매달 내는 수업료)에 허덕이며 소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쌀밥을 해먹었다는 황당한 이유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러시아 사할린의 한 탄광으로 끌려갔다. 다행히 나이가 어려 험한 일 대신 좀더 수월한 기계를 다뤘지만 그의 운은 여기까지였다. 조국은 광복과 함께 눈부신 성장을 해나갔지만 그는 먼 타국에서 이를 지켜봐야 했다. 지난 3월 2일 서울시립미술관(SeMA) 벙커에서 마주한 조 옹의 사진은 이런 한 많은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줬다. 살아남은 강인함과 함께 처연함이 남아있는 그의 사진 앞에서 관람객들은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지하벙커에 문을 연 ‘SeMA 벙커’가 2018년 첫 기획전으로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 전을 선보인다. 3·1 운동 99주년을 기념해 4월 15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일제 강점기 강제노동의 역사를 조명한다. 

일본 홋카이도 슈마리나이댐 공사, 아사지노 구 일본육군비행장 건설 현장 등에 동원돼 착취당한 조선인들의 유골 115위의 귀환 과정을 담은 손승현 작가의 사진 140여점을 비롯, 미국의 데이비드 플래스 교수와 송기찬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교수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선보인다. 

일본 홋카이도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발굴은 1980년대 일본의 시민과 종교인으로부터 시작됐다. 지난 1996년부터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과 일본의 민간 전문가들과 학생, 청년들이 함께 일본 홋카이도에서 태평양 전쟁 시기의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50여구를 발굴했고, 인근 사찰 등에서 100여구의 유골을 수습했다. 

이들은 그간 발굴, 수습한 한국인 유골 총 115구를 유족과 고향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70년만의 귀향’ 사업을 추진해 마침내 2015년 9월 홋카이도를 떠나 도쿄(東京)-교토(京都)-오사카(大阪)-히로시마(廣島) 등 이들이 강제노동 현장으로 끌려갔던 1만리(약 4000㎞) 길을 되돌아 70년 만에 고국 땅을 밟게 된다.

전시에서는 먼저 이 과정을 데이비드 플래스의 다큐멘터리 ‘길고 긴 잠’을 통해 소개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홋카이도에서 강제노동 중 사망한 115명의 조선인 희생자 유골을 한국과 일본의 자원 활동가들이 함께 발굴해 일본 열도를 관통하는 여정 끝에 고국 땅에 안치하는 과정을 기록한 영상으로 70년만의 귀향 사업을 한 눈에 보여준다.

다큐멘터리가 전후 사정을 상세히 알려준다면 손승현 작가의 사진은 좀더 감성적으로 발굴과정과 귀환 과정을 보여준다. 한 컷 한 컷마다 다른 의미가 담긴 사진은 희생자의 아픔을 좀더 생생히 보여준다. 과거 사건을 다룬 사진이지만 마치 어제 찍은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선조들이 지은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 위해 참여한 일본인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혹독한 날씨에서도 발굴을 진행하는 모습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지 않은 가운데 민간 차원에서의 협력과 화해는 잔잔한 감동과 함께 일제의 만행에 대한 분노를 함께 자아낸다.  

이와 함께 조상찬 옹처럼 여러 사정으로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사진도 큰 의미를 준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러시아 사할린 동포, 중국 조선족, 그리고 자이니치(재일동포)까지. 다양한 재외동포의 인물 사진 역시 많은 생각거리를 안긴다. 

유해라도 고국땅을 밟은 원혼들과 달리 이들은 저마다의 사정 때문에 현재까지도 한국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이방인으로서 낯선 나라에 적응하고 끝내 살아남은 사람들의 주름진 얼굴에선 인생의 혹독한 애환이 묻어나 있다. 

이와 함께 소개된 송기찬의 다큐멘터리 ‘또 다른 고향’도 눈여겨볼 만하다. 유골발굴에 참여했던 재일동포들의 정체성에 관한 인터뷰를 다룬 작품으로 광복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국적만 놓고 보면 재일동포는 일본인이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차별을 받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고향인 한국도 북한도 그들을 환영하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식민지 조선인들만큼이나 가혹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여의도 전시가 끝나면 오는 8월 일본의 오사카와 도쿄로 옮겨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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