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의 말이 끊어져 버린 것은 영훈의 주먹이 그의 입을 막아 버린 까닭이다
단주의 말이 끊어져 버린 것은 영훈의 주먹이 그의 입을 막아 버린 까닭이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8.03.16 11:02
  • 호수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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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77]

“저놈을 그대로 두어야 옳단 말인가.”
물소리도 바람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으며 주의가 영훈에게로만 옮겨가는 것이다. 버드나무 포기를 헤치고 조약돌을 밟으며 반석 위로 껑층 뛰어 올라갈 때 피가 수물거리며 분이 치밀어 올랐다. 이 저주스러운 존재를 왜 하필 이날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인가――자기 스스로도 그날의 흥분을 의아해하리만치 마음의 동요를 이기는 재주 없었다.
“미란이 간 곳을 그래 자네두 모른단 말인가.”
싸움을 걸러 그 자리로 그렇게 그를 찾아온 것인 듯 단주는 영훈의 앞으로 나선다.
“내가 물으려던 말을 자네가 먼저 물은 셈이네.”
영훈의 마음도 그 순간 단주와 똑같은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사랑이나 미움이나는 모르는 결에 서로 교통하게 되는 것이다. 이쪽에서 사랑하면 저 편에서도 직각적으로 느끼는 것이요, 이편에서 미워하면 고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그것을 깨닫게 된다. 단주의 미움은 번개같이 영훈의 마음속으로 전염해 갔다. 준비나 하고 있었던 것같이 퉁명스런 대답에 단주는 벌컥 화가 치밀었다.
“반달 장간(長間)을 한 곳에 있으면서두 간 곳을 모른다면 거짓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팔불용이지.”
“자네가 계책이나 쓴 것이 아닌가 하구 있었는데 이렇게 안달을 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두 않은 것 같아 안심은 되네만 사실 나두 몰라 딱해 하구 있는 중이네.”
“그동안에 미란에게 무례를 한 것은 아니겠지.”
하고 싶던 말을 그 기회를 이용해서 물어 보고 마음의 안정을 얻자는 것이 영훈을 노엽힌 결과가 되었다.
“아무렇게 지냈든 간에 자네에겐 무슨 아랑곳인데.”
“아랑곳이 아니구. 미란이 누군 줄 똑바로 알구나 말인가. 나와 결혼한다는 걸 알구나 말인가.”
“결혼――.”
“자네는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분수를 넘었다가는 코 다치리.”
몸이 떨리는 것을 영훈은 참으면서 그의 태도를 될 수 있는 대로 대수롭지 않게 받으려는 생각이었다.
“결혼을 하든 무엇을 하든 뉘 알랴만 대체 미란이 자네를 얼마나 사랑하구 있는 셈인가, 어디 들어 보세나.”
“사랑이구 무엇이구 그런 문제가 아니거든. 사랑 다음엔 무엇이 오겠나. 자네에겐 말할 필요두 없지만 벌써 사랑 여부쯤 문제가 아니야.”
“무엇이 어째 또 또 한번…….”
피가 화끈 달면서 영훈의 눈에 불꽃이 피어올랐을 때 단주는 의기가 도도해서 한 번 더 입을 놀리는 것이다.
“모든 것을 점령해 버린 이제 사랑 여부의 문제가 아니란 말야. 세상에서 미란을 제일 첨으로 알아버린 것이 나란 말이네.”
말이 끊어져 버린 것은 영훈의 주먹이 그의 입을 막아 버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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