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떠나기
훌쩍 떠나기
  • 신은경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18.03.16 11:13
  • 호수 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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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몰려든다는 커피점

 어느날 가보니 문 닫힌 채

“여행 다녀오겠다”는 메모 남겨

 그런 ‘훌쩍 떠남’이 놀랍지만

 누구든 시도해봄직 하지 않을까

동네 골목 모퉁이에 아주 유명한 커피점이 하나 있다. 출판사 밑에 자리 잡고 있는 찻집이어서 그런지 예전부터 유명한 예술가들이 많이 모였던 곳이라 들었다. 요즘은 젊은이들의 명소가 되어 하루 중 어느 때라도 사람들로 붐비지 않는 시간이 없다. 눈으로 구경만 하고 지나다가 어느 날 그 문화의 향기에 한 부분이 되어 볼까 하여 문을 열고 들어서 본 적이 있었지만 빈자리가 없어 허탕을 치고 말았다. 

보통 한적한 구석자리는 단골손님들의 단골자리다. 사람이 많거나 적거나 시끄럽거나 고요하거나 늘 노트북을 켜놓고 오랫동안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때 왔다가 어느 때까지 머물러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커피점에 요즘 들어 사람 기색이 없어 보일 때가 간혹 있다. 내가 차를 타고 지날 때여서 자세히 들여다 볼 수는 없어, 혹 휴일이어서 그런가 생각했다. 걸어가다가 들여다봐도 사람 흔적이 없어 아마도 연휴여서 그런가 싶었다. 그래서 하루는 아예 마음먹고 확인을 하고 싶었다. 일부러 커피숍 앞으로 걸어가 보았다. 매일 보는 창가 쪽이 아닌 다른 쪽 출입구로 돌아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손바닥만한 종이에 쓴 문구가 보인다. 글씨가 참 단정하다.

“몇 달쯤 안식여행 다녀오겠습니다. 일일이 말씀드리지 못하고 떠납니다. 맑고 고요하게 돌아오겠습니다.”

세상에나. 

이렇게 잘 되는(?) 커피점이 문을 닫고 쉼을 찾아 떠난다고? 그것도 몇 달 동안?

놀랍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하고, 그리고 매우 존경스럽기도 했다. 그 내려놓고 떠남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긴 사실 그렇지. 뭐 대단한 것에 매여 산다고 우리는 이리도 꼼짝 못하고 있는 것일까?

떠나면 당장 굶어죽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구하는 일이어서? 딱히 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래서 나도 한 번 훌쩍 떠남을 단행해 보아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남편과 함께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처음으로 가보는 이른바 패키지여행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여행사에서 목적지를 정하고 사람을 모집하면 원하는 사람들이 하나든 둘이든 여섯이든 모여서 한 버스를 타고 같이 가는 것이다. 

바람이 무척 부는 날이었다. 비도 온다는 예보도 있어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제복 입은 기사님이 운전해 주는 편안한 버스가 모든 염려를 눌러 주었다. 첨엔 어색했지만, 그냥 쉼이 좋았다. 

모르는 가족과 같이 앉아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고, 잘 잤느냐고 아침인사를 하였다. 쉬었다 가는 여행 안내소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마치 얼마 안 있어 곧 또 찾아올 사람처럼 자세히 물었다. 

지방특산물 축제도, 문학 작가들의 생가도 들러 보았다. 그 집안 툇마루에서 보이는 저 멀리 마을 정경을 무심히 바라보기도 하고, 동네 아주머니가 직접 견과를 뭉쳐 만든 과자를 사고, 농부가 애써 농사짓고, 미처 팔지 못한 사과를 한 봉지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동안의 떠남이었는데 마치 먼 곳으로 오래 다녀온 기분이다. 그래, 멀리 갔다 오긴 했지.

세상에 아무 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 세상에 아무 것도 ‘그저 그런 것’도 없다. 모두 신기하고 특별하다. 그리고 단 한 번뿐이다.

시간이 없어서거나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여행을 떠나기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여행가 박예본은 그것은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기 스스로에게 방관을 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조셉 캠벨의 말을 인용하며 “떠나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종이 되는 것이고, 삶이 말라붙어 감각이 상실되는 것” 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행길에서 만난 한 외국여성이 ‘여행은 육체와 정신을 단기간에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좋은 주치의’ 라고 한 말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말하고 떠나야지.

‘미리 일일이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맑아져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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