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상 연기상 휩쓴 영화 ‘쓰리 빌보드’
아카데미상 연기상 휩쓴 영화 ‘쓰리 빌보드’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3.16 13:29
  • 호수 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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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강간당하며 죽었다”는 광고판 세운 까닭은?
올해 아카데미 연기상을 휩쓴 ‘쓰리 빌보드’는 딸을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 수사를 촉구하는 도발적인 문구가 적힌 광고판을 세운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진은 극중 주인공 밀드레드가 “아직도 범인을 못잡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경찰서장?”이라고 적힌 광고판 앞에 서 있는 모습.
올해 아카데미 연기상을 휩쓴 ‘쓰리 빌보드’는 딸을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 수사를 촉구하는 도발적인 문구가 적힌 광고판을 세운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진은 극중 주인공 밀드레드가 “아직도 범인을 못잡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경찰서장?”이라고 적힌 광고판 앞에 서 있는 모습.

경찰 비난하는 광고판 세운 여성과 마을사람들의 첨예한 갈등 그려

세 명의 캐릭터 대결 볼만… 여우주연상 받은 맥도먼드의 연기 압권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중년여성 밀드레드가 마을 외곽에 버려진 광고판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본다. 이어 그는 이 광고판을 운영하는 회사에 찾아가 1년간 광고 거재를 제안하며 첫달 광고료 5000달러를 내민다. 이후 광고판에는 붉은 배경과 함께 그녀가 제시한 다음과 같은 문구가 걸리게 된다.

“내 딸이 강간당하며 죽었다.” 

“아직도 범인을 못 잡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윌러비(경찰서장)?”

베니스영화제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열광케 했던 영화 ‘쓰리 빌보드’는 이러한 파격적인 도발로부터 시작된다.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영화 ‘쓰리 빌보드’가 3월 15일 개봉했다. 

작품은 존경받는 경찰서장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광고판을 세운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먼드 분)가 마을주민들과 대립하면서도 이를 지키려는 과정을 다룬다. 

밀드레드의 도발적 행동 이후 한적했던 마을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광고판을 세운 이유는 하나였다. 사회적인 시선을 끌어서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게 만드려는 의도였다. 그녀의 도발은 먹혔다. 광고판이 화제가 되면서 언론이 주목하자 마을에서 존경받는 경찰서장 윌러비(우디 해럴슨 분)와 법보다 주먹이 앞선 경찰관 딕슨(샘 록웰 분)은 단숨에 무능한 경찰로 낙인찍힌다. 

윌러비와 딕슨은 밀드레드를 찾아가 철저한 수사를 약속하며 회유하려 하지만 그녀는 범인을 잡기 전까지 철수할 생각이 없다며 이를 거부한다. 윌러비를 존경하는 마을사람들로부터 졸지에 공공의 적이 된 밀드레드는 온갖 압박에도 불구하고 광고판을 내리지 않았고 급기야 방화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밀드레드는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간다.

작품은 딸을 잃은 엄마의 복수극인 듯 싶지만 실상은 나약한 인간의 본성을 들추며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다룬다. 줄거리는 심심하다. 경찰의 수사를 촉구하는 도발적인 광고판을 치우려는 사람들과 이를 지키는 이들의 갈등을 두 시간 내내 묘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다. 과정은 단순하지만 복잡한 사정을 가진 캐릭터들의 향연으로 보는 내내 흥미진진하다

딸을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을 잡기 위해 나선 밀드레드는 모범적인 어머니는 아니었다. 딸인 안젤라가 생전에 밀드레드에게서 벗어나려고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나빴다. 사건이 벌어진 날도 밀드레드가 차를 빌려줬다면 딸은 화를 면했을 수도 있다. 그녀가 광고판을 세운 이면에는 모성애보다는 죄책감이 더 컸음을 암시하고 있다. 또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저성장증 자동차 딜러인 제임스를 은연 중에 무시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부당한 폭력을 가하는 모습은 비열하기까지 하다. 상처 받은 내면을 감추기 위해 겉으로 강한 척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광고만 보면 무능해 보이는 윌러비 서장도 마찬가지.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사는 그는 친절하고 공정한 태도로 인해 마을사람들의 신망이 두텁다. 또 가족에게도 헌신적이다. 부당한 폭력을 가하며 분노를 표출하는 밀드레드를 훈방조치 할 정도로 피해자 가족에 대한 배려도 돋보인다. 이런 그를 향한 밀드레드의 비난에 반감을 가질 정도로 모범적인 경찰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그의 마지막 선택은 그 역시도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다른 극의 핵심인 딕슨은 전형적인 악당처럼 보인다. 죄책감 없이 인종차별을 하고 경찰뱃지를 내세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지만 제복을 벗으면 성인 한 명도 제압 못하는 무력한 인간이다. 마마보이라 불릴 정도로 어머니 말에는 꼼짝 못하는 착한 아들이고 범죄자를 잡기 위해 목숨을 걸 정도로 집요한 직업정신도 가지고 있다. 

결국 세 사람은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보통 사람들을 대변한다. 작품은 평범한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받을 때 겪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입체적인 캐릭터를 통해 풀어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딸의 죽음으로 악만 남은 ‘밀드레드’를 연기한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렬한 여성 캐릭터를 완성했다. ‘딕슨’으로 분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거머쥔 샘 록웰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이기적인 경찰과 마마보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딕슨을 표현한 그의 연기는 긴 여운을 남긴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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