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훈은 분이 솟으면서 단주를 발길로 밀어서 모질게 돌 위에 던지고야 말았다
영훈은 분이 솟으면서 단주를 발길로 밀어서 모질게 돌 위에 던지고야 말았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8.03.23 11:12
  • 호수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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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78]

“그것이 네 자랑이냐.”
영훈에게는 언제인가 미란이 은근히 암시한 그의 상처의 출처가 바로 단주임을 직각하고 그에게 대한 노여움이 불길같이 뻗쳐올랐다. 얼굴에 진흙을 끼얹힌 듯 모욕을 느끼면서 분노와 괴롬이 한데 합쳐서 단주에게로 향했다. 영훈에게 비기면 단주는 아직도 격년의 차가 있어서 아이인 셈이었으나 와락 달겨들게 될 때 호락호락 눌러 버릴 수는 없어서 기어코 두 사람은 달라붙은 채로 얼리게 되었다.
“화평한 집안에 엉뚱하게 뛰어들어선 모든 것을 문란하게 해 놓구 남의 맘까지 뺏으려는 도적 같으니.”
씨름이나 하듯이 뻗디디다가 결국 그 자리에 쓰러져서는 엎치락뒤치락 어울린 채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시원스럽게 때리고 눕히는 것이 아니라 끈적끈적 붙어 두 마리의 게같이 넓은 반석 위를 조금씩 밀린다. 반석 아래는 깊은 웅덩이가 져서 길이 넘는 물이 푸르게 고여 있는 속으로 헤엄치는 물고기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반석 높이래야 한 길 장간밖에는 안 되는 것이나 고기떼는 그 바위 위에서 겨루고 있는 두 마리의 미끼를 바라고 있는 듯 좀체 헤어지지 않는다.
“간특한 계교를 미끼삼아 얼마나 남의 맘속에 괴롬을 주구 있는지를 생각하면 너같은 죄인은 없는 줄 알아라.”
“연구소니 무어니 하구 음악을 미끼 삼아 여자들을 농락하는 부랑자 같으니…….”
가야 때문에 연구소에서 싸우다가 그의 약혼자 갑재에게서 들은 똑같은 말을 단주의 입에서 들을 때 영훈은 무지한 것에 대한 분이 한결 솟으면서 단주를 발길로 밀어서 모질게 돌 위에 던지고야 말았다. 단주가 일어설 때 다시 발길로 차려다가 또 한데 어울리고 말았다. 갑재에게 변을 당하던 때와는 반대로 단주에게 대해서는 영훈의 힘이 윗길이어서 물인지 불인지를 헤아리지 않는 언제 끝날지를 모르는 싸움이었다. 게같이 이 구석 저 구석 밀려다니다가 바위 아래 물 위로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날이 맞도록 두 사람은 갈라지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속히 결말을 지으려는 듯 두 몸은 바윗가까지 밀려나갔고 기슭에서 지긋들거리다가 물속에 텀벙 빠지게 된 것은 한 사람의 뜻이 아니라 두 사람 공동의 의사인 모양이었다. 두 사람의 결머리가 다 물속에 빠지는 것쯤은 대단히 여기지 않는 것이다. 바위 위에서 겨루던 두 사람은 물속에서는 갈라질 밖에는 없어서 바위를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내 약혼자다 손가락 하나 건드려봐라 하고 고함을 치던 단주도 물속에 잠기게 되니 그뿐 말을 뺏기어 버렸다. 물 위에 뜨면서 숨이 막혀 입을 버끔버끔하고 두 팔을 휘저으면서 별수 없이 이제는 물과 싸우게 되었다. 웅덩이를 헤어나면 얕은 여울이 져서 흰 돌만 붙들면 고생은 면하는 것이나 단주에게는 그만한 재주도 없었다.
“약혼자나 무어니――물속에서나 구해 보지.”
영훈은 헤엄의 연습이 있었던 까닭에 물을 먹으면서도 웅덩이를 밀려나와 여울의 돌을 붙들었다. 물에 빠진 쥐여서 몸이 무거운데다가 기맥이 쇠진해서 돌에다 몸을 의지하고 정신없이 하늘을 우러러본다. 하늘빛이 푸른지 흰지도 분간할 수 없고 미란의 자태도 적어도 그 순간만은 의식 속에서 잊혀져 버렸다. 웅덩이 속에서. 허비적거리는 단주의 꼴이 가여웠으나 그렇게 생각하는 자기의 꼴도 역시 가여운 것을 깨달으면서 영훈은 이긴 것도 아니요, 진 것도 아닌 그 속에서 갑재와 싸웠을 때와도 같은 비참한 꼴을 느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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