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을 ‘보증인’으로 세우려는 김정은
시진핑을 ‘보증인’으로 세우려는 김정은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03.30 13:31
  • 호수 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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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시진핑을 만나기 위해 타고 간 열차는 김정일이 숨진 곳이다. 김정일은 2011년 12월 17일 ‘1호 열차’의 객차 안에서 급사했다. 당시 북한당국은 “김정일이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다가 곁쌓인 정신·육체적 과로로 너무도 갑자기 애석하게 열차에서 서거했다”고 발표했다.

김정은은 왜 난데없이 시진핑을 찾아갔을까. 이유는 하나다. 보증인이 필요해서다. 김정은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믿지 못한다. 트럼프가 행여 나중에 딴소리를 하면 원하는 걸 얻지 못할 수가 있으니 확실한 후견인을 만들어놓으려는 속셈이다. 김정은은 핵무기에 손을 댄 리비아, 이란 등에 보여준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트럼프에게 선(先) 경제원조·체제보장, 후(後) 핵 포기를 하겠다는 입장이다.(트럼프가 그 요구를 들어준다고 해도 실제로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리는 만무하지만)

반면에 트럼프도 부시,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의 사기술에 농락당한 과거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의 요구는 김정은의 역순이다. 김정은이 먼저 핵을 포기 하면 그에 합당한 경제원조, 체제보장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 말을 실제로 실행할까. 그건 북한에 달렸다. 김정은이 핵 시설 공개→사찰→동결의 프로세스를 밟는다면 트럼프는 약속을 지킬 수 있다. 그게 북한의 공산주의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가 다른 점이다. 

김정은은 남북정상회담(4월), 미북정상회담(5월)에서 중국이 보증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김정은은 미국이 핵 포기만을 먼저 요구할 때 시진핑이 나서서 “나를 믿고 쟤(김정은) 말을 한 번 들어주라”는 말을 해달라고 부탁하려고  기차를 탄 것이다. 김정은은 시진핑과의 회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조선과 미국이 나의 노력에 선의로 답해 평화 안정 분위기를 조성하고 평화 실현을 위해 단계적 동시조치를 취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단계적 동시조치…. 어디서 많이 본 말 아닌가. 이 말은 김정일이 1994년 제네바합의, 2005년 6자회담 등에서 써먹은 말이다. 미국이 북한에 제재를 해제하고 경제지원을 하고 체제를 보장한다면 북한은 단계적으로 핵을 포기하고 동결하겠다는 말이다. 과연 그렇게 했을까. 김정일은 미국이 2008년 테러리스트국가에서 명단을 빼주자 같은 해 12월, 6자회담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비핵화 논의에 응하지 않았다. 이듬해인 2009년 한달 간격으로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두 번째 핵실험을 강행했다. 말로는 비핵화라면서 실제 조치는 ‘단계, 동시’를 내세우며 시간을 끌고 그 사이 뒤로는 비밀리에 고농축우라늄 핵 공장을 가동시켰다. 

북한은 이번 회담으로 중국과 6년간의 서먹한 관계를 깨끗이 청산하고 과거의 끈끈한 혈맹 관계를 회복했다.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존재임을 싫지만 인정해야 한다. 중국은 남한이 미국의 힘을 빌어 6·25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한반도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만들려는 순간 인민군을 내려보내 도주하던 북한군을 도왔다. 그 결과 오늘날의 휴전선이 남북으로 그어졌고 이후 우리 민족은 갈등과 분열의 고통스런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중국은 정전협정 당사국 중 하나인데다 과거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국가인 것처럼 행동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이 진정으로 원해서가 아니고 미국의 강요에 의해서였다. 대북제재의 핵심이랄 수 있는 원유공급 차단을 중국이 하지 않은 것만 봐도 이 같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은 한반도 정세가 해빙 분위기로 바뀌자 마음이 급해졌다. 중국은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는 걸 원치 않는다. 남북이 통일이 되거나 남북이 휴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바꾸고 영구평화 체제로 들어가는 것을 싫어한다. 이유는 자국의 안보와 생존 때문이다. 북한이 ‘강한 국가’가 되거나 한반도가 하나로 통일되면 중국으로서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중국은 한반도가 현재와 같은 분열·갈등·적대관계로 영원히 남기를 바란다.  

이제 한반도는 한·미와 북·중 팀, 어느 팀이 과연 외교·인내·지도력 면에서 더 뛰어난지를 가늠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김정은과 시진핑은 그들 나름의 시나리오를 이미 만들어놓았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도 그들보다 한수 앞을 내다보고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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