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개척자, ‘할류’를 시작하다!
인생개척자, ‘할류’를 시작하다!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18.03.30 13:37
  • 호수 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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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박막례 어르신의 계모임 화장법은 유튜브에서 폭발적 인기

나의 스토리 다듬어 말하면 노년세대도 스타될 수 있어

둘둘 말린 먼지말이가 땅위를 뒹굴며 황야의 무법자가 빠른 손놀림으로 권총을 빼내어 악당을 처단하고 이내 총구의 연기를 입으로 훅 날리면 영화는 끝이 났다. 우리가 봤던 서부 영화들의 상당수는 선과 악의 구도가 분명하고 결국 악인은 망한다는 권선징악의 구도를 철저하게 구현했다. ‘황야의 결투’가 그러했고, ‘OK 목장의 결투’와 ‘황야의 7인’이 그러했다. 죽이고 싸우고 되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안쏘니 퀸, 로버트 테일러, 게리 쿠퍼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열광하고 거울을 보며 표정도 따라해 봤다.

요즘에야 한류가 대세고, 이에 발맞추듯 미국 빌보드에서는 소녀시대, 빅뱅, 싸이, 그리고  최근에는 방탄소년단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때는 우리가 그들에게 열광하고, 이제는 그들이 우리에게 반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할류’의 시대가 왔다!

‘한류’가 아니고 ‘할류’다. 할아버지, 할머니 스타들이 세상을 재점령하기 시작했다. 왕년의 청년들이 세월 속에 주름계급장을 들고 유튜브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싱거울 정도로 일상적인 주제들을 들고 전세계인들이 공유하는 인터넷 현장의 주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70대 유튜브 스타로 알려진 박막례 할머니의 계모임 화장법은 장안의 화제를 넘어 젊은이들이 이를 재조명하고 있고, 멀리 살고 있는 손주들에 대한 그리움을 글과 그림으로 그려낸 이찬재 할아버지의 SNS 팔로어는 33만명이 넘는다. 다시 가위질을 시작한 재단사 여용기 할아버지는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서부 영화 그 총잡이들에게 열광했던 그 세대가 이제 새로운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있고, 각본없는 드라마의 주연으로 세대를 넘나들고 시대를 주무르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아이돌이 있다면, 할매돌, 할배돌이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통합하는 아교역할을 시작했다. 노인의 부정적이고 축 쳐진 퇴색이미지를 리모델링 하듯 새 것으로 바꾸어 놓고, 젊은이들과 동떨어져 있는 ‘갈 세대’가 ‘올 세대’의 의미로 전달되고 있다. 이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노년세대의 개척의 힘이다. 잿더미 속 판잣집에서 밭을 일구고 시멘트를 개어 건물을 올리던 세대의 ‘개척 연속성의 힘’이다. 그때는 무너져버린 나라를 개척했고 이제는 배제되었던 자신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늙어도 에너지 수준은 떨어지지 않는다. 젊어서는 모두를 위한 더 큰 그림을 그렸고, 나이 들어서는 이제 나만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실버화장의 여신이 된 박막례 할머니의 계모임 화장의 핵심은 ‘더 찐하게, 더 더 찐하게!’이다. 더 찐한 화장이 우리의 속마음이었다. 애들 눈치보느라, 주위 시선 의식하느라 빨간 립스틱을 과감히 입술에 두툼하게 바르고 싶던 마음을 꽁꽁 숨기고 있었다. 

이제 그 속마음을 꺼내고 진심을 입술에 올리니 ‘할류’가 시작된다. 손주에 대한 그리움을 너무 크게 말하면 안될까 싶어 맷돌 윗짝 같은 체면으로 눌러놨던 마음을 글로 보내고 그림으로 그려 드러내고 고백했더니 ‘할류’가 열린다. 신식 양복에 감탄하는 요즘,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기술이 무슨 소용이겠나 싶었지만 몽유병처럼 집어들게 된 가위를 잡고 쓱쓱 움직여 다시 자르고 꿰매기를 시작했더니 ‘할류’가 만들어진다. 

우리의 시작은 과거에는 거대한 사회적 목표를 향해갔고, 현재는 소소한 내면의 목표를 향해간다.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두고 솔직한 고백을 했더니, 세대가 환호하고, 시대가 감탄한다. 자 그렇다면,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었던 스타일, 내가 쓰고 싶었던 글, 내가 입고 싶었던 그 옷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왕년 서부영화에 열광하면서도 밤낮으로 일해 세운 이 나라의 개척자들이여, 서부의 개척자가 영화였다면, 우리의 개척은 실화였다. 실화의 주인공이 이제 새로운 삶의 영화를 만들어 가보자. 혼란 속에 질서를 만들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가장 값없는 것을 가장 값지게 만들어낸 사회세공의 달인들이 이제 인생세공을 시작해보자. 나의 스토리를, 나의 문장을, 나의 단어를 말하고, 쓰고, 적어보자. 누가 우리의 이야기와 일상을 보겠냐 싶겠지만, 이야기를 시작하니 세상이 듣는다는 것을 박막례 할머니를 통해 보았고, 문장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니 세대가 듣기 시작하고, 녹이 쓴 가위를 움직여보니 청춘들까지 거기에 답을 하지 않는가! 앞서는 자들이 있으니 이제 우리도 용기를 내어보자. 시작하고 개척해보자. 이 삶을 이 인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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