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막달라 마리아:부활의 증인’…‘최초의 여성 사도’ 마리아의 시선으로 본 예수
영화 ‘막달라 마리아:부활의 증인’…‘최초의 여성 사도’ 마리아의 시선으로 본 예수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3.30 14:02
  • 호수 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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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그간 창녀로 잘못 알려진 막달라 마리아의 시선으로 예수의 행적을 쫓는다. 사진은 극중 유다(왼쪽)와 마리아.
작품은 그간 창녀로 잘못 알려진 막달라 마리아의 시선으로 예수의 행적을 쫓는다. 사진은 극중 유다(왼쪽)와 마리아.

외경 ‘마리아복음서’ 바탕… 남부 이탈리아 돌며 예수의 여정 촬영
순수한 마리아, 영민한 베드로, 극단적인 유다 등 세 캐릭터 이색적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성경에는 두 명의 유명한 ‘마리아’가 등장한다. 한 명은 예수의 어머니로 유명한 ‘성모’ 마리아고 다른 한 명은 예수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한 ‘창녀’ 막달라 마리아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라 묘사한 부분은 없다.

교황청도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2016년 막달라 마리아를 ‘사도 중의 사도’로 공식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달라 마리아의 존재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만약 막달라 마리아가 진짜 사도였다면 어땠을까. 이런 의문에서 출발하는 영화 한 편이 3월 28일 개봉했다. 2016년 개봉한 ‘라이언’으로 단숨에 주목받는 감독으로 떠오른 가스 데이비스가 연출한 영화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다. 

영화는 막달라 마리아(루니 마라 부)가 강제로 정한 결혼을 거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이유만으로 마리아는 가족의 수치로 전락한다. 결국 가족들은 마리아에게 ‘네 속에 불길한 것이 들어 있다’며 물에 빠뜨리면서, 일종의 귀신 쫓는 의식을 치르기까지 한다. 마리아는 발버둥치지만 수차례 물에 빠지다 기절했고, 그렇게 마리아는 가족들에게 마음 문을 닫고 대화조차 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호아킨 파닉스 분)가 마리아를 찾았고 그녀를 진심으로 위로하며 첫 만남을 가진다. 이후 운명처럼 예수에게 끌린 마리아는 집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와 제자들의 여정에 합류한다. 

이후 이야기는 신약성서에 적힌 대로 흘러간다. 예수는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놀라운 기적을 잇달아 펼치면서 메시아(구세주)로 칭송 받고 이 소문은 예루살렘까지 흘러 들어간다. 결국 예수는 유다의 배신으로 로마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에게 붙잡혀 온갖 고초 끝에 십자가에 못이 박혀 목숨을 잃는다. 이 모든 과정은 마리아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예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마리아는 무덤을 지켰고 부활한 예수의 첫 번째 목격자가 된다. 

예수가 등장하는 영화는 늘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명장 마틴 스콜세지가 동명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연출한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은 예수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인간의 삶을 살다간다는 설정 때문에 종교계의 반발을 일으켰다. 1988년 제작된 작품이지만 국내에선 2003년에서야 개봉됐다. 멜 깁슨이 연출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도 개봉 전에 감독이 살해 협박을 받을 만큼 극심한 반대에 시달렸다. 이번 작품도 신약성서에 마리아에 대한 묘사가 적어 외경인 마리아복음서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종교인들이 보기엔 다소 껄끄러울 수 있다. 다만, 영화는 영화다. 성서와 무관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종교를 떠나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다.

이번 작품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마리아와 ‘베드로’ 그리고 예수를 밀고한 ‘유다’다. 세 사람은 모두 예수의 사도이지만 저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마리아는 아무 목적 없이 예수의 제자가 된다.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마저도 어떠한 보상도 안 받고 용서하는 예수의 숭고함에 이끌려 그를 따르는 인물로 묘사된다.

반면 베드로와 유다는 예수가 가진 능력을 이용해 혁명을 꿈꾸는 인물로 등장한다. 물론 두 사람도 차이가 있다. 베드로는 철저히 이성적이다. 가는 곳마다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가 어떻게 하면 좀더 극적으로 메시아로 칭송받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유다는 베드로와 달리 광신도처럼 예수를 따른다. 예수가 하루 빨리 예루살렘에 입성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고 자신을 천국으로 이끌어주길 바란다.  이를 위해 밀고까지 감행한다.

예수가 죽자 세 사람의 선택은 또 갈린다. 자신이 꿈꾸던 이상이 무너졌다고 여긴 유다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베드로와 마리아는 예수의 부활을 믿고 복음 전파에 나서지만 차이가 있다. 베드로는 예수의 부활을 극적인 장치로 활용, 견고한 계획 아래 복음을 전파하려 하고 마리아는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의 사상 전파에 나선다.

각각 순수하고, 계산적이고, 극단적으로 묘사되는 마리아, 베드로, 유다의 모습은 사회의 변화를 가져올 새로운 ‘무언가’가 등장할 때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응을 대변한다. 비트코인 광풍이 불었을 때 이를 신봉하던 사람들도 세 부류로 나뉜다. 순수하게 기술을 찬양하던 사람이 있고, 영민하게 사람들의 심리를 활용해 이득을 본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유다처럼 극단적으로 쫓다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 

누가 옳은지는 알 수 없다. 작품에서도 어느 누구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마리아, 베드로, 유다 중 누가 더 충실한 사도였는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영화의 감상 포인트다.

마리아와 예수를 연기한 루니 마라와 호아킨 피닉스의 호연과 남부 이탈리아 일대를 돌며 2000년 전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것도 흥미롭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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