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52]무심한 성인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52]무심한 성인
  • 권 헌 준 한국고전번역원 일성록번역팀 선임연구원
  • 승인 2018.04.13 11:07
  • 호수 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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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성인 

한결같이 봐주는 은택을 내려 주시어

끝까지 보살펴 주시는 은혜를 균등하게 받게 된다면

그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크게 감복할 것입니다.

倘垂一視之澤 (당수일시지택)  

均蒙終始之惠 (균몽종시지혜)

則仁恩所被  不啻挾纊 (즉인은소피 불시협광)

- 《일성록(日省錄)》 정조 11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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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지택(一視之澤)은 《승정원일기》나 《일성록》과 같은 역사문헌을 번역하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용어입니다. 유사한 의미로 ‘一視之政(공평하게 대하는 정사)’, ‘一視之義(공평하게 대하는 뜻)’와 같은 용어도 있습니다.

‘一視’의 사전적 의미는 ‘모두를 평등하게 보다’ 입니다. 그렇다면 이 뜻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당(唐)의 한유(韓愈, 768∼824)는 「원도(原道)」 라는 글에서 ‘성인은 한결같이 보아 똑같이 인자하게 대한다[聖人, 一視而同仁].’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一視’는 성인이 만백성을 무심(無心)하게 바라보듯 모든 존재를 차별 없이 바라본다는 의미가 됩니다. 성인이 그러하듯 만백성을 다스리는 임금 역시 이러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흉년을 당한 백성의 사정은 서울과 지방이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마는 서울 지역은 본래 지방에 의지하여 식량을 얻으니, 이 때문에 지방에서 농사를 망치면 서울이 먼저 그 피해를 입는 것입니다. ……중략……지금 기근으로 인한 황급한 상황은 아마 지방보다 서울이 더 심할 것입니다. ……중략……얼마 전에 내탕고를 열어 삼도(三道)의 굶주린 백성을 진휼하였는데, 조정에서 모든 백성에게 공평하게 내리는 은택[一視之澤]은 본래 서울과 지방의 구별이 없는 것입니다. 

1809년(순조9)에 조선은 심각한 기근을 겪게 됩니다. 백성이 모두 굶어죽는 상황이다 보니, 순조는 특별 대책으로 내탕고(왕의 재물을 보관하는 창고)를 직접 열어 삼남(三南) 지방을 구제하는 등 특별 구제를 실시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사간원 소속의 헌납 이장후(李章垕)가 위와 같은 상소문을 올린 것입니다. 즉 삼남 지방을 구제한 것과 같이 서울 지역에도 똑같은 은택을 내려 달라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일시(一視)’의 반대편 의미는 ‘차별’입니다. 성인은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더 아껴주고, 먼 곳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미워하는 일이 없습니다. 천하의 모든 존재를 사심(私心)없이 대하는 것이 곧 공(公)입니다. 따라서 이는 비단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통치자뿐만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놓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할 태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의 많은 비리와 부정의 이면에 사심에 의한 차별이 있습니다. 사적 감정을 배제하고 모두를 공평하게 바라보는 성인의 비유를 통해 나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차별을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모든 존재를 차별 없이 대하는 태도에서 공(公)의 영역은 회복되고 확보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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