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강의
신나는 강의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18.04.20 10:59
  • 호수 6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에서 정년퇴임 후에도

명예교수로 강의해 왔으나

이번 학기부터 그만둬

더이상 신나게 강의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

오래 전 미국 미시간 대학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경영대학원 김위찬 교수와 같은 동네에 산 적이 있었다.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발행하는 ‘Harvard Business School Bulletin’에 글도 쓰고 또 미국 기업인들 모임에 초청받아 강의할 정도로 유명한 소장학자였다. 어느 날 그는 요즈음 영어공부를 많이 한다고 하였다. 미국에서 교수까지 된 분이 무슨 영어공부냐고 물었더니 옛날 어릴 적에 할아버지로부터 종아리에 매를 맞으며 한학을 배웠는데 한학에서 기업경영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미국식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한다는 거였다. 학교에서 그는 매우 인기 있는 강의를 하는 것으로 소문나 있었다. 나는 그가 얼마나 강의를 잘하는지 보고 싶어서 하루는 그의 강의를 들으러 갔다. 100명이 훨씬 넘는 수의 학생들로 꽉 찬 강의실에서 그는 열강을 하였다. 강단 위를 이리저리 다니면서 강의의 중요 내용을 그림 그리듯 칠판에 썼다. 키도 별로 크지 않은 동양인 교수가 좌중을 완전히 사로잡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매끄러운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의 신들린 것 같은 강의에 학생들이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불란서에서 강의하면서 그 유명한 「Blue Ocean(블루 오션)」을 저술하였다.    

 나는 평생직장이었던 연세대에서 3년 전 정년퇴임한 이후 명예교수로서 계속 강의를 해왔는데 이번 학기부터 강의를 그만두었다. 강의를 그만두게 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과거처럼 사회복지 현장을 다니면서 얻게 되는 살아있는 정보를 수업시간에 제공하는 것이 좀 부족해졌고, 학위를 마친 제자들은 시간강사라도 하려고 동분서주하는데 은퇴교수가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모양새가 좀 안 좋은 것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강의를 더 이상 신나게 하지 않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퇴임 전에는 내가 강의를 할 때 신이 나서 했던 것 같다. 어떤 과목은 교재를 보지 않고도 2〜3시간의 수업을 거뜬히 해냈다. 아마 내가 은연중 김위찬 교수를 롤 모델로 삼았던 게 아닌가 싶다. 신이 나지 않는 강의는 접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후배교수들은 더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퇴임한 선배교수가 스스로 강의를 그만둔 것을 아마 고맙게 생각하리라.   

‘신난다’란 무슨 뜻일까? 사람들이 신이 나서 무슨 일을 한다면 그 일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나의 강의 경험을 떠올리며 3가지 특징적 요소가 있지 않겠나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독특하다(unique). 학문이란 복잡하거나 모호하게 존재하는 현상을 어떤 틀로 분류하고 분석하여 그 실체를 명확하게 보여준 다음 그것들을 다시 종합하거나 통합하여 어떤 구체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적어도 사회과학에서의 연구는 그렇다. 신나는 강의란 교수가 전공분야에 관해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새롭게 발견한 것을 전문가적인 해석을 통해 독특한 의미를 부여함으로 과거 유사한 연구와는 구별되는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도 나만이 알고 있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의미 있고, 따라서 열정을 바치게 된다.      

둘째는 생산적이다(productive). 신나는 강의는 학생들의 사고에 확대를 일으키고, 학생들에게 탐구 의욕을 불러일으키며,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일선 현장에서 실험하거나 시도해 보고 싶은 자극을 주고, 결국 정책입안의 능력을 배양시킨다. 일반적으로 생산적이라 함은 자신의 장점을 사용하여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생산적이란 말은 긍정적, 건설적, 혹은 창조적이라는 의미를 갖기 때문에 인간과 사회는 생산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발전하게 된다. 생산적인 삶이란 풍요로운 삶을 말한다.    

셋째는 재미있다(fun). 배움의 열망이 있는 학생들을 강의실에서 만난다는 것 자체가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다. 가르치는 일, 배우는 일, 세상의 모든 일이 결국은 재미있고 보람된 삶을 살기 위함이 아닌가? 재미를 추구한다는 것은 그 안에서 자유를 만끽한다는 뜻도 있을 것이다.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재미있지도 않을 뿐더러 나를 속박하여 거짓되고 가장된 모습을 연출하게 한다. 학문 연마만이 아니고 세상의 모든 열정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삶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가 삶의 주인공일 때만 가능하다.

 이제 신나게 했던 강의가 끝났으니 앞으로 강의 대신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 하겠다. 그 일은 독특하고, 생산적이며, 재미있어야 하겠다. 나이가 많아도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즐거움과 보람을 추구하면서 신나게 살 수 있다면 노년이 결코 부정적이지만은 아닐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