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프터매스’ 실제 항공기 참사를 모델로 한 ‘복수와 용서’ 그려
영화 ‘애프터매스’ 실제 항공기 참사를 모델로 한 ‘복수와 용서’ 그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4.20 11:24
  • 호수 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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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독일 상공에서 비행기 2대가 충돌한 실제 항공기 사고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복수와 용서의 의미를 그리고 있다. 사진은 극중 관제사로 등장해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제이콥'
2002년 독일 상공에서 비행기 2대가 충돌한 실제 항공기 사고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복수와 용서의 의미를 그리고 있다. 사진은 극중 관제사로 등장해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제이콥'

2002년 독일서 271명이 사망한 비행기 사고 각색… 슈왈제네거 주연

가족 잃은 남자의 분노와 죄의식에 짓눌린 가해자의 고통 대비돼

[백세시대=배성호기자]

10년 간 복역을 마친 한 노인이 아내와 딸의 무덤을 찾는다. 이때 그에게 한 젊은 남자가 찾아와 길을 묻는다. 노인은 젊은 남자에게 길을 알려주겠다고 나섰고 그렇게 두 사람은 얼마간 대화를 나누며 묘소를 거닌다. 그러다 갑자기 젊은 남자가 총을 꺼내 노인을 향해 겨눈다. 노인은 두려워하지 않고 남자에게 방아쇠를 당기라며 모든 행동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두 사람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졸지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통해서 복수와 용서를 다룬 영화 ‘애프터매스’가 4월 19일 개봉했다. 지난 2002년 독일 위르겐 상공에서 실제 있었던 두 비행기간 충돌 사고를 각색한 작품으로 ‘터미네이터’ 시리즈로 유명한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출연해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당시 사고는 조종사나 관제사의 일방적인 잘못이 아닌, 관제사의 지시와 공중충돌방지장치 지시가 엇갈리며 생긴 사고다. 하지만 탑승객 271명이 전원 사망하는 안타까운 결과로 이어졌고 현재까지도 끔찍한 항공 사고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작품은 비행기 사고로 사랑하는 부인과 임신한 딸을 잃은 ‘로만’(아놀드 슈왈제네거 분)과 자신의 실수로 무고한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피폐한 삶을 살게 된 ‘제이콥’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로만은 부유하지는 않지만 행복한 남자였다. 건축업자인 그는 공사 현장에서 동료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그의 인생의 유일한 결점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다. 뉴욕에서 타지생활을 하는 그에게 어느 날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던 아내와 출산을 앞둔 딸이 찾아오기로 한다. 그는 목욕재계를 하고 나이에 맞지 않게 집도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등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을 위해 노력한다. 아내를 위한 한 다발의 꽃도 준비한 로맨티스트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공항을 찾을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였다.  

이런 그에게 불행은 한 순간에 찾아왔다.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로만은 깊은 충격에 빠졌다. 공항 측은 사고를 내고도 돈을 미끼로 협박 수준으로 합의를 요구한다. 그는 미안하다는 단 한마디 대답을 원했지만 끝내 듣지 못했다. 결국 그는 모든 원인을 제공한 관제사를 만나 일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인 제이콥도 ‘그날’ 이전까지는 남부럽지 않은 나날을 보냈다. 아름다운 아내와 자신을 닮은 아들과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날도 관제탑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동료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전화선이 문제가 된 것도 그다지 큰 문제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비행기가 연착되면서 그에게 불행이 시작된다. 동료 대신 연착 소식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잠시 자신의 자리를 비웠고 이 짧은 시간에 통신이 엇갈리면서 대형사고가 발생한다.

졸지에 그는 참사의 가해자로 낙인찍힌다. 아내와 아들 역시 수모를 당한다. 결국 가족은 풍비박산 나고 제이콥은 대인기피증에 걸리는 등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러다 주변의 격려로 조금씩 일어서기 시작한다. 직장의 권유로 지역을 옮기고 이름도 바꾸면서 새로운 삶에 적응해 나간다. 그가 원래 모습을 되찾은 듯하자 떠났던 아내와 아들도 돌아온다. 다시 단란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희망에 젖어 있을 때 ‘그 남자’가 찾아온다. 결국 로만과 제이콥의 만남은 또다른 비극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잔잔하다. 심한 갈등도 없다. 갑자기 모든 것을 잃은 로만과 수많은 사람을 죽게 했다는 죄의식을 안고 살아가는 제이콥의 감정 묘사에 공을 들이고 이를 통해 복수와 용서의 의미를 묻는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이 벌어진다. 죄를 지은 사람은 재판을 통해 엄벌을 받고 피해자는 이를 통해 위안을 얻는다. 다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원인이 복합적이어서 특정한 누군가를 가해자로 지목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피해자들이 받는 고통은 해소되지 않는다. 최근 4주기를 맞은 세월호 사고가 대표적이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했고 정부가 공식 사과를 하기 전까지 살아남은 사람들과 유족들은 오랜 시간 고통 속에 보내야 했다.  

영화 속에서 로만도 지인들에게 수많은 위로를 받았지만 정작 누구에게도 사과를 받지 못한다. 공항 측이 고용한 변호사들은 적반하장격으로 합의서를 내밀며 사인을 요구한다. 그는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제이콥을 찾았지만 마찬가지였고 억눌렀던 화가 폭발한다. 그렇다고 해서 제이콥을 비난할 수 없다. 제이콥도 충분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다 겨우 그 터널을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제이콥은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로만에게 진실한 사과를 하지 못한다. 결국 두 사람은 파국으로 치닫고 이 과정을 통해 작품은 복수와 용서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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