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빈자리는 쓸쓸하지만 추억은 따뜻하다
[기고]빈자리는 쓸쓸하지만 추억은 따뜻하다
  • 류성무 수필가
  • 승인 2018.04.27 18:32
  • 호수 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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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락 텃밭에서 일을 하다가 생각 없이 그늘로 들어선 곳이 밭둑에 울창하게 서 있는 감나무 밑이었다. 그늘진 곳이지만 선선하기보다는 쓸쓸하고 스산한 고독감이 느껴졌다. 혼자라는 허전함이 온몸을 감싸며 문득 ‘세월도 가고 사람도 가는 구나’ 하는 푸념으로 이어진다. 불과 몇 해 전까지 이곳에서 대화를 나누던 친구들이 떠났다. 화사하게 비쳐주는 햇빛 아래 새는 지저귀고 나비들이 밭가에 열심히 날아 노니는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추억을 삼켜버린 빈자리가 됐다.
지인이 나눠준 이곳 텃밭에서 퇴직 공무원 5명이 심심풀이 삼아 각종 야채를 키웠다. 텃밭 가꾸기는 핑계고 진짜 목적은 그늘 아래서 간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공직 생활 이야기는 기본이고 서로의 사생활까지 공유하며 각별하게 지냈다. 때로는 지나친 농담과 언쟁으로 얼굴을 붉혀 며칠간 데면데면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풀어졌다. 늘어가는 주름만큼이나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였고 하루만 연락이 뜸하더라도 병고가 있지나 않을까 염려했다.
감나무 밑 그늘은 오늘도 쉼터로 기다려주는데 그렇게 즐거이 놀던 친구들은 간곳없이 왜 돌아오지 않는가! 혼자 속으로 중얼거려본다.
친구들이 모두 떠나버린 빈자리에 더 머물고 있기 싫어서 밭일에 열중했다. 얼마간은 고된 노동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땀을 훔치다 문득 평생 밭일을 하시며 고생하다 떠나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외출했다 집에 오면 어머니는 농사일로 늘 자리를 비웠다. 아주 가끔 어머니가 집에 있기라도 하는 날이면 어찌나 기분이 좋았는지 지금도 그 느낌이 생생하다. 어머니가 영원히 자신의 자리를 비우게 됐을 때 미쳐 효도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했다.  
분가한 자녀들의 빈자리 역시 노년의 슬픔이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 때 자식들이 모여 정담을 나누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 섭섭한 마음에 먼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집으로 들어간다. 앞으로 볼 날이 많지 않다 여겨서 그런지 자식들이 올 때는 반갑지만 떠나간 빈자리는 늘 서운하다. 자식들을 보내고 나면 우리 노부부는 무표정하게 아무 말도 없이 마주 보고 앉아 있고 방안은 쓸쓸한 공기로 가득 찬다. 그러다가 “아버지, 어머니 집에 잘 도착했습니다”라고 전화가 온 뒤에야 얼어붙은 공기가 풀린다. 
해가 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와 뒷정리를 한 후 마당에 나와 잠시 숨을 골랐다. 하루 종일 빈자리만 생각하다 다소 울적해진 기분을 달랬다. 그러다 문득, 빈자리마다 그 사람들과의 인상 깊은 에피소드들이 들어차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빈자리는 쓸쓸했지만 추억은 따뜻했다. 떠나간 사람들을 아름답게 기억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되도록 오랫동안 그들을 건강하게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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