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우는 것이 가야에게 보내는 정성이라는 듯 눈물이 뒤를 이었다
마음껏 우는 것이 가야에게 보내는 정성이라는 듯 눈물이 뒤를 이었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8.05.04 10:48
  • 호수 6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83]

(……다시 안 오는 것이라면 가야의 그 몸은 어떻게 되는 것인구. 그 눈은 어떻게 되는 것인구. 무엇 때문에 자기 손으로 자기 한 목숨을 끊었는구. 슬픔은 그렇게두 큰 것인가. 죽음보다두 큰 것인가. 누구 때문인가. 영훈 때문인가 나 때문인가. 영훈을 위해선가 나를 위해선가. 세 사람이면 왜 안 되는 것인가. 왜 한 사람은 없어져야 하는가. 없어지는 것이 왜 가야의 차례여야 하는가. 가야보다두 나래야 옳은 것이 아닌가. 차례가 바뀌어진 것 같다. 내가 가야 옳은 것이다. 가야를 남기구 내가 가야 옳은 것을 가야가 잘못 가 버린 것이다. 내 허물이요, 내 죄요, 내 책임이 아닌가. 가야여, 왜 그리 조급하게 왜 그리 빨리 가버렸는가. 나를 오죽이나 원망하구 오죽이나 한하면서 갔을까. 가야, 가야, 가야…….)
백 가닥 생각이 마음을 할퀴면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가야의 눈과 표정이 피뜩 피뜩 머릿속에 떠오르자 몸부림이 나면서 사람들의 눈치조차 무시하고 목소리를 놓아 버렸다. 방문이 열리는 바람에 방안의 수선스런 기색이 물결같이 밀려나왔다. 소파에 나와 앉는 것은 영훈이었다. 미란 옆에 주저앉아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우더니 그 역 봇살같이 울음이 터졌다. 느낄 대로 느끼고 몸을 떨 대로 떨었다. 영훈이 추스르는 바람에 미란은 한층 감정이 볶이우고 울음이 더해졌다. 두 사람에게는 지금 우는 것밖에는 없다는 듯 마음껏 우는 것이 가야에게 보내는 정성이라는 듯――눈물이 뒤를 이었다.
죽음은 정리를 가져왔다. 슬픔은 그 정리를 위해서 요구되는 희생인 듯하다.
영훈과 미란 두 사람에게는 한동안은 가야의 죽음이 세상에서 제일 큰 사건이어서 그것을 생각하고 슬퍼함에 마음과 몸을 그대로 바쳐왔다. 아침에 잠을 깼다 밤에 다시 잠들 때까지 무엇을 하든 간에 그것은 마음을 붙들어서 뜻대로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시간을 쌓는 수밖에는 길이 없었다. 죽음이니 슬픔이니 하는 것이 세상의 큰 괴변이라면 그런 것들보다 한층 웃길의 괴변이 시간이다. 시간이 주름 잡히는 동안에는 죽음이니 슬픔이니 모든 것이 신통하게도 주름 사이에 접혀 들어가서 잊혀지고 정리되어 버린다. 날이 거듭되고 주일이 거듭되어 한 달이 지나는 동안에 두 사람에게는 가야의 죽음에서 받은 상처가 점점 나아가고 눈물 자취도 뿌덕뿌덕 말라 갔다. 평화롭고 고요한 추억 속에서 두 사람은 가야를 차차 멀고 그리운 것으로 생각하면서 겨우 자기들 일신 위로 주의를 돌리고 생활을 정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생각하면 두 사람의 생활의 정리를 위해서 가야는 가버린 셈이나 둘만이 남았던 까닭에 생각은 단출해지고 방향은 단순해졌다. 두 사람에게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것이 가야였다. 영훈이 미란을 생각할 때에도 그 등 뒤에는 반드시 가야의 자태가 떠오르는 것이었고 미란이 영훈을 생각할 때에도 역시 등 뒤에 가야의 자태가 한몫 끼이던 것이 가야가 가버린 까닭에 두 사람은 피차에 한 사람씩만을 생각하면 족하게 된 것이다. 가야의 희생이 이 단순화를 두 사람에게 선물로 보낸 셈이다. 오랫동안 헤매이던 미란도 이제는 확적한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되어 두 사람의 애정은 제물에 결정적으로 맺어지고 굳어졌다. 조촐하고 검소한 두 사람의 사랑이 원하는 것은 창조적인 것의 생산이요, 예술의 완성이었다. 그것을 생각할 때 영훈에게 오는 문제는 구라파행의 계획이었다. ‘아름다운 것’의 창조를 위한 여행의 일건이었다.
이 계획을 속히 구체적으로 서두르게 한 것은 미란이 뜻을 같이하게 되었음이다. 미란도 구라파에 대한 원념을 은연중 불붙여 오던 중 영훈과 맺어지자 그와 응당 행동을 같이하려고 한 것이다. 영훈은 준비를 위해 시골에 있는 자기의 몫을 정리할 양으로 여러 차례나 왔다갔다 하게 될 때 미란도 스스로의 요량이 있었다.
교직을 물러서고 연구생들을 물리치고――한 가지의 목적을 위해서 모든 것을 정리해 갔다. 신변도 정리하고 생활도 간단하게 해서 언제든지 쉽게 길을 떠날 수 있도록 생활을 단순화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