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은 이숭인(李崇仁)
도은 이숭인(李崇仁)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05.04 10:54
  • 호수 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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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베트남을 방문한 자리에서 과거 우리나라가 베트남 국민에 저지른 학살 등에 대해 유감 표명을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며 “양국이 미래지향적인 협력 증진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 신문 보도를 접하고 만약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7~1392) 선생이 살아있었더라면 과연 어떤 문장이 나왔을까 생각해 보았다. 

도은은 고려 말 대학자이자 문장가이자 충신이다. 어릴 적부터 글 솜씨와 총기가 뛰어나 천재소리를 듣고 자랐다. 14세에 국자감시에 합격하고 16세에 문과에 급제했고 21세에 태학(지금의 국립대학)의 교수로 임용돼 진덕박사를 겸하여 제자를 길렀다. 이때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함께 학문을 강론하기도 했다. 

도은은 불사이군(不事二君·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함)의 충절을 지킨 충신이며 성리학을 완성한 학자로서 고려 말 삼은(三隱·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의 한 사람으로 평가 받는다. 원래 삼은이라면 이색, 정몽주와 함께 야은 길재를 포함시켰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학자들 사이에 야은 대신 도은을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학자들은 그 이유의 하나로 도은의 ‘절의’를 꼽는다.  

이색·정몽주·이숭인 세 사람은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지키다 죽임을 당한 반면 야은 길재는 천수를 다하고 죽었으니 절의 면에서 보면 고려의 삼은은 이색·정몽주·이숭인 세 사람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도은의 문장력이 얼마나 뛰어난 지 실감나는 예 하나. 1388년 고려 우왕 7년, 공민왕과 명나라 사신이 살해된 사건에 대해 명나라 태조가 발끈하고 나서며 고려에 책임을 추궁했다. 이때 도은이 왕명을 받아 명나라에 보내는 답서를 지어 바쳤다. 태조가 그 글을 읽고 감탄해 고려를 압박하기는커녕 오히려 공민왕에게 시호를 내리고 우왕의 왕위계승을 허락했다. 명에 보내는 공물의 양도 줄였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도은의 학문과 문학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학술대회도 간간이 열리며 국·한문학자들이 박사학위 논문에 도은을 자주 인용하는 걸 볼 수 있다.  

도은은 조선 개국 때 정도전의 원한을 사서 정도전의 심복 황거정에게 죽임을 당했다. 조선의 태종은 죽음의 무고함을 밝히고 이조판서를 증직하고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문’은 도덕을 지키고 문장에 박학하다는 뜻이고 ‘충’은 자신이 위태로우면서도 임금을 받든다는 의미다. 태종은 또 권근과 변계량에게 명하여 도은의 문집 2권을 발간하도록 했다. 

만약 도은이 지금 살아 있으면 정치·외교·국방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을 테고,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의 재능이 긴요하게 쓰여 국가를 구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도은이 베트남에 전하는 유감의 글을 지었더라면 아마 베트남 지도자도 명나라 태조처럼 도은의 글에 감동받아 한국이 베트남 양민들에게 저지른 일들을 마음속으로부터 용서했을 지도 모른다. 

도은을 배출해낸 성주군은 최근 도은의 영정과 도은집 등을 간직하고 있는 청휘당(성주군 수륜면 신파동)을 40억원을 들여 대대적으로 개축한다. 아울러 청휘당을 경유하는 가야산 선비 길도 조성한다. 과거 선비가 많이 살던 마을 주변을 포함해 마수폭포-네이처센터-청휘당 구간의 35.2km의 길이다.  

이번 청휘당 중건을 계기로 도은의 심오한 학문과 사상이 일반인들에게 새롭게 주목 받기를 기대하며 도은의 한시를 소개한다.

신해년 제야에 
落落已違世 초연히 이미 세상 떠나 / 悠悠仍感時 아득히 시절을 탄식한다. / 餘年付羲易 남은 인생 주역에 부치고 / 卽事讀坡詩 지금은 동파의 시를 읽는다. / 坐久燈花落 오래 앉으니 등불의 불똥 떨어지고 / 看來斗柄移 하늘에는 북두칠성 옮아간다. / 男兒心有在 사나이 마음 속 품은 뜻을 / 除子更誰知 자네 말고는 다시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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