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자부심 느끼게 하는 ‘한국문집총간’
민족 자부심 느끼게 하는 ‘한국문집총간’
  • 최영록 한국고전번역원 홍보전문위원
  • 승인 2018.05.04 10:56
  • 호수 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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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500책에 달하는 ‘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이라는 거질의 총서(叢書)를 들어 보셨나요? 아마도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이 총서는 신라말에 활동한 고운 최치원의 시문집 ‘계원필경’과 ‘고운집’을 시작으로 1910년 한일늑약에 항거해 절명시(絶命詩) 3편을 남기고 순국한 우국지사 황현의 ‘매천집’까지, 역대 인물들의 대표적인 문집들을 수집해 1259종으로 총정리해 영인(影印)한 책입니다. 고운 선생만 2종이어서 모두 1258명의 문집을 모은 것이죠. 

민족문화추진회가 1986년 8월 이 문집 편찬사업을 시작해 2005년 정편 663종 350책을 펴냈으며, 이어 후신인 한국고전번역원(교육부 산하 전문 학술기관)이 속편으로 2012년 12월 596종 150책을 완간, 500책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정신문화를 잇는 ‘26년의 대역사(大役事)’의 마침표를 찍은 셈이죠. 

이 총서에는 익히 들어본 ‘퇴계집’, ‘율곡집’, ‘삼봉집’, ‘서애집(징비록 포함)’ ‘완당전집’, ‘이충무공전서’, ‘고산집’, ‘연암집’ 등 거의 모든 문집이 망라돼 있다고 보면 됩니다. 한 책이 평균 550쪽이고 글자수는 총 2억자에 이릅니다. 

500책이 나란히 비치된 한국고전번역원 자료실의 총서를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민족적 자부심이 우러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수의’ 한문학자들이 번역해 한글로 풀어내지 않는 한 ‘한문 문맹자’인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흰 것은 종이이고 검은 것은 글씨’이니 ‘눈뜬 장님’과 다름없다고 하겠지요.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닌가요. 선조들이 물려준 사상의 정수(精髓)가 무엇인지를 전혀 알 수 없는, 답답한 현실이 안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국가사업으로 해마다 엄격한 기준에 의해 서종을 선정해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1968년부터 시작해 현재 번역률 17.7%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체 5250책 중 929책이 완역 출간됐을 뿐이지만 말입니다. 100% 번역을 하려면, 현재의 전문 번역인원과 국가예산 지원으로는 최소 65.4년이 걸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올해는 채제공의 ‘번암집’ 등 31종 66책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왕개래’(繼往開來) 즉, “옛 것을 잇고 내일을 열어가는 지름길이 바로 고전(古典) 속에 있다”고 믿습니다. 하여, 한국고전번역원은 ‘우리 가슴에 우리 고전을’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국민들의 가슴에 ‘인문정신의 알찬 열매’를 듬뿍 안기고자 1000종이 넘는 문집을 비롯,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조선왕조 의궤’ 등 역사문헌과 ‘육전조례’ 등 특수고전(전문‧실용서) 번역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임중도원(任重道遠), 할 일은 많고 길은 너무 멉니다. 국민들의 관심과 성원이 절실하고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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