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실패한 미란은 이제 세 번째 시험에 성공해서 행복을 완전히 잡은 것
두 번 실패한 미란은 이제 세 번째 시험에 성공해서 행복을 완전히 잡은 것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8.05.18 11:14
  • 호수 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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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85]

하다가 사무원은 마음이 켕기는지 옆 동료들을 피뜩 바라보고 빙긋이 웃음을 띠우면서,
“……평생 원이 여행이에요. 외국에 대한 동경——이것을 버릴 수는 없어요. 색다른 것이 왜 그리 맘을 끄는지——아마도 사람의 본능이 아닌가 해요. 지금 제 눈엔 두 분같이 행복스런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시 이 고장으로 돌아오실 것이 없이 한번 구라파로 가면 평생을 거기서 지내구 싶지 않나 두구 보시죠. 그야 악덕두 많지만 유유한 품이 예서같이 그렇게 좀스럽게 뜯구 할퀴는 법은 없거든요.”
사무원이 아니라 동무로서 자기의 주의까지를 헤쳐 보이는 것이다. 영훈들의 주의 주장을 그 또한 가지고 있어서 의외의 곳에서 공명자를 얻은 셈이나 생각하면 새것에 대한 호기심, 모르는 것에 대한 원——그런 것이 보지 못한 외국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누구에게나 일으켜 주고 북돋아주는 것인 듯하다. 사람에게는 태어난 고장이 영원한 고향이 아닌 것이요, 고향을 한 번 떠남으로서 새로운 고향을 찾고자 하는 원이 마음속에 생기는 것인가 보다. 외국을 그리워함은 고향을 찾아서 떠난 긴 평생 속에서의 한 고패요 향수(鄕愁)인 것이다. 영훈은 ‘아름다운 것’의 발견을 위해서 고향 밖을 그리는 것이나 근본 회포에 있어서는 사무원의 심중과 다를 것이 없었다.
사무원의 설명으로 여정을 북돋아 가지고 거리에 나서면 두 사람은 한시가 바쁘게 마음이 술렁거린다. 익숙한 거리도 얼마 안가 작별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서 걸으면 친밀하고 반가운 것으로 보이면서 지난날의 불유쾌한 기억의 가지가지가 자취 맑게 사라져 버린다. 산에 오르면 흉금을 헤치는 간들바람에 푸른 하늘이 더욱 가깝고 눈 아래 강물이 한층 빠져서 맑다. 뷰로에서 사가지고 온 여행잡지 속의 그림보다도 풍물이 깨끗하고 맑아 보인다. 강 건너 비행장에서는 마침 오후의 길을 떠나는 여객기의 자태가 눈에 뜨인다. 푸드득거리고 날개 소리를 내면서 질펀한 벌판을 자유로 내닫다가 사뿐하게 땅을 차고는 볼 동안에 뜨기 시작한다. 평지에서 보던 것과는 달라 멀리 내려다볼 때 한 마리의 새같이 무심한 것으로 바라보인다. 비행장 허공을 맴도는 법도 없이 뜨기 시작하자 그대로 강을 건너서는 비스듬히 북쪽 하늘로 날아가는 것이다. 수리같이 활짝 편 날개가 오후의 햇빛을 받아서 고기비늘같이 새하얗게 반짝반짝 눈을 찌른다. 북쪽 강산으로 날아가는 새하얀 붕새! 행복을 실은 자유로운 혼.
“우리가 탈 것이 바로 저것이라나.”
머리 위를 요란하게 울리고 지나갈 때 영훈은 하늘을 손가락질하면서 고함을 쳤다. 날개 위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조그맣게 보인다.
“얼른 타 봤으면!”
미란에게는 세 번째의 희망이었다. 봄의 단주와 계획하던 것이 실패로 끝났던 것이요, 다음 현마에게 끌려 동방을 날았던 것이요——지금 세 번째 영훈과 함께 북으로 날려는 것이다. 첫 번 두 번에서 인생을 시험하다가 실패한 미란은 이제 세 번째에 시험에 성공해서 행복을 완전히 잡은 것이다. 이번 비행은 전 두 번과는 뜻이 다른 것이요, 방향도 다르다. 모험의 불안과 시험의 공포에 떠는 안타까운 출발이 아니고 졸업과 승리의 안정한 출발인 것이다. 지난 반년 동안이 그 어느 때보다도 파란 많고 곡절이 많았던 것은 인생의 생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치르게 된 까닭이었다. 두어 시절이 갈렸음에 지나지는 않아도 그의 마음속에 받은 인상으로 하면 여러 해를 살아 온 듯한 첩첩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이제 그의 인생으로서는 처음의 평온한 시기를 맞이한 셈이다.
“얼른 타구 북쪽 하늘을 날아 봤으면!”
“여객기의 자태가 점점 작아져 나중에는 한 개의 점이 되어 먼 산을 넘을락 말락 할 때 미란은 활개를 펴고 재기를 디디면서 원을 또 한번 외쳐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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