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떠나기 2
훌쩍 떠나기 2
  • 신은경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 승인 2018.05.18 11:24
  • 호수 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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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커피점 주인이 그랬듯

나도 미국에 훌쩍 떠났다 돌아와

한 달간 객지에서 지내다 보니

아쉬울 것도 그리울 것도 없어

초연히 사는 나를 발견

지난 번 칼럼에서 동네 커피점 주인의 훌쩍 떠나기를 이야기했었다. 며칠 전 보니 가게 문이 다시 열렸다. 예전처럼 충성스런 손님들이 다시 찾아와 빈자리가 없어 보인다. 그 앞을 지나면서 우리는 마음대로 이야기를 지어내 기분 좋게 조잘대었다. ‘아마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을 거야’, ‘많이 걷고 많이 깨달아 돌아왔을 거야’, ‘잘 쉬고 맑아져서 돌아왔을 거야.’ 

부러워만했던 나도 지난 한 달간 훌쩍 떠났다 돌아왔다. 지난 3월, 2년 동안 몸담았던 청소년 관련 기관의 일을 마무리 짓게 되었다. 몸담고 있던 대학으로 다시 돌아가기까지 얼마간의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무엇을 할까? 날마다 매인 몸으로 일하다가 갑자기 내 앞에 ‘날마다 휴무’인 날들을 맞는다는 것은 신기하고도 당혹스런 일이었다. 우선 쉬고 싶었다. 몸도 마음도.

오래 전부터 미국 교회에 간증집회를 한 번 다녀가라는 고등학교 친구의 권유가 생각났다. 환경의 변화도 주고,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움직임이 될 것 같았다. 급하게 한 달간의 일정을 잡았다. 

한 달이나 집을 비우자니 여러가지 신경 쓰이는 게 많았다. 일정 조정 등 곳곳에 연락할 일이 많이 생겼다. 무농약 채소 재배기는 전기코드와 물을 다 빼고 남은 이파리들은 빨리 먹어치워야 했다. 한 달 후까지 두면 못쓰게 될 냉장고 속의 식품들도 다 정리했다. 화분의 식물들은 일단 충분히 물을 주어 놓았지만, 한 달을 잘 견뎌낼지 염려가 되었다. 매일 먹는 영양제도 한 달치, 혹시 비상시 필요한 약품도 준비했다. 한 달 동안 입을 옷을 준비하자니 세탁소에 한 번씩 갔다와야 할 의복들도 있었다. 오래 집을 비웠다 돌아왔을 때 어수선함을 막기 위해 거의 대청소 수준으로 손을 보다 보니 떠나기 전 날 밤늦게까지 일이 끝이 없었다. 사는 게 뭐가 이리도 복잡하냐 싶었다.

한 달 동안 미국 LA와 남가주에서 ‘홀리 스피치’라는 주제로 신학대학에서의 세미나, 교회 간증 집회 등 계획된 15번의 강연을 했다. 코리아타운에 있는 작은 호텔에 머물렀다. 일정은 빡빡했지만, 여행객이다 보니 모든 게 가벼웠고 이해가 되었다.

입을 옷도 한정되어 있다 보니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집에 있을 때보다 ‘입을 옷이 없다’는 불만도 없었다. 신발도 구두와 운동화. 호텔방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있으니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찾으러 돌아다닐 필요도 없다. 부엌이 없으니 끼니는 모두 문밖을 나가야 가능하다. 때론 모두 사먹어야 하는 게 불편하기도 했지만, 여자들이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얼마나 여행을 반기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간간히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외국 나가면 한 열흘쯤 지나면 집에 오고 싶어지던데, 어때?”

“한 달이 가까워지니 아주 살고 싶어지는데?”라고 답을 보냈다.

돌아올 날이 가까워지자 또 다른 친구가 메시지를 보냈다.

“객지에서 한 달을 그렇게 돌아다니다니 대단하다. 그만 어서 돌아오라.”

그런데 신기한 일은, 지난 한 달 동안 ‘여기가 집이거니’하고 살다보니 아쉬울 것도, 그리울 것도 없더라는 것이다. 내 집이라고 돌아와도, 이 또한 여행지인 것을. 짧은 이 한 세상 사는 것도 다 나그네 발걸음인데, 뭐 그리 연연해하고, 모으려 하고, 가지려 하고, 따지려 하는가 싶어졌다. 좀 더 초연하게 살고 싶다. 한정된 옷으로 살고, 한정된 음식을 먹고, 한정된 소유로 만족하면 될 것 같다.

여행지에서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 많은 물건을 다 살 수가 없다. 다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부엌 용품이 아무리 좋은 게 있어도, 아무리 싸고 좋은 옷이 있어도 그걸 다 지고 올 수 없다. 더욱이 집안 가구나 자동차는 아무리 맘에 들어도 가져 올 방법이 없다. 큼지막하고 편안한 렌터카를 빌려 한 달을 잘 다녔지만 그걸 짊어지고 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요즘 뉴스를 보니, 세상에 좋은 물건을 다 비행기로 실어 와서 자기 것으로 누리고 소리 지르며 살았던 사람도 있었다는데, 그래서 그 끝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한 달간의 훌쩍 떠나기 덕분에 이제 자신이 좀 붙었다. 다음 훌쩍 떠나기 연습도 해 볼 것이다. 그것이 반복되면 이 땅에서 훌쩍 떠나기도 두려움 없이 아주 홀가분할 것 같다. ‘하느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라고 <행복>을 노래한 천상병 시인이 <귀천>에서 노래한 것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자신이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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