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피와 씨앗’ 장기이식을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
연극 ‘피와 씨앗’ 장기이식을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5.18 13:36
  • 호수 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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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감옥살이 하는 ‘인간 쓰레기’라도 생명은 소중

지난 2007년 국내 한 인기가수가 라디오에 출연해 어머니에게 간을 이식해주려고 했다가 무서워서 중도에 포기했다는 고백을 했다. 결국 어머니는 생을 마감했고 그는 이를 두고 후회한다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이 사실이 최근 재조명되면서 그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지난 5월 15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무대에서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단, 조건이 하나 더 붙었다. 장기의 공여자가 사회적으로 매장된 ‘인간 쓰레기’라는 사실이 그것.

장기기증을 둘러싼 가족 간 갈등을 통해 생명윤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피와 씨앗’이 오는 6월 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진행된다. 

작품의 줄거리는 간결하다.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남자 아이작은 잠시 출소 허가를 받고 원칙주의자인 보호관찰관 버트와 어머니 소피아의 집을 방문한다. 만나진 못했지만 자신의 딸 어텀에게 신장이식을 하는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그곳엔 수의사이자 아이작의 어머니인 소피아와 죽은 아내 썸머의 자매이자 농부인 바이올렛 그리고 딸 어텀이 함께 살고 있다. 소피아는 손녀를 위해 아이작에게 신장을 이식해 달라고 요구하며 그게 옳은 일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아이작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일련의 과정에서 이 가족의 비밀이 하나둘 드러난다. 

원작자인 영국 극작가 롭 드러먼드는 ‘트롤리 딜레마’에서 착안해 작품을 집필했다고 전해진다. 트롤리 딜레마는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 등장해 널리 알려졌다. 트롤리 열차가 5명의 인부를 덮치기 직전 레일 변환기를 당겨 1명의 인부 쪽으로 가도록 방향을 트는 게 옳은지를 묻는 사고(思考) 실험에서 파생된 말이다.

작품에서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오간다. 소피아는 원칙주의자인 버트에게 묻는다. 자식을 위해 죽을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버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질문을 비틀며 달라진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가? 여기서 보호관찰관 버트는 망설인다. 소피아는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려 죽여야 하는 이가 ‘인간 쓰레기’라는 전제를 덧붙인다. 

이에 버트는 “버튼 같은 것만 하나 눌러서 처리하는 거라면…”이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이를 통해 작품은 아무리 선한 일이라도 당사자가 원하지 않았을 때 그 일을 실행하는 것이 옳은가를 묻는다.

이번 작품은 독특한 무대 활용이 눈에 띈다. 등장인물이 드나드는 무대 왼쪽 대기 공간을 어텀의 방으로 연출했고, 무대 뒤편을 밀밭 등으로 연출했다.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이 공간에서 진행되는 연기는 소형카메라에 담기고, 실시간으로 무대 벽면에 상영된다. 거대한 벽면을 통해 등장인물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면서 복잡한 심경이 훨씬 잘 드러난다. 이러한 장치는 딜레마에 빠진 관객들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든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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