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문화유산
뿌리와 문화유산
  • 정재수
  • 승인 2008.03.1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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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오래된 나무를 꼽으라 하면 단연 용문사의 은행나무를 말한다. 추정 수령이 1100년에 이르고 높이 67m, 밑둥의 둘레는 15.2m에 달한다. 향나무의 일종인 울릉도의 진백나무도 최고령으로서 회자되곤 한다.

지난 85년의 태풍 때 큰 가지 하나가 잘려나가긴 했지만, 아직도 굳건히 바위를 움켜쥐고 있다. 이 나무는 추정 수령이 2500년에 이른다. 어떤 나무는 천년을 살아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또 어떤 나무는 거대하지는 않지만 수천년을 견딘 끝에 최고의 향을 안에 품었다는 명성을 얻었다.

이 나무들이 누천년을 견디고 마침내 살아남아 사람들로부터 우러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든든한 뿌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뿌리는 무엇인가. 문화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이 경천동지하고 생활양식이 바뀌었다고 해도 우리가 한국인임을 뚜렷하게 느끼게 하는 것. 그러나 우리는 문화에 대해 무감하다. 젊은 세대들은 한류(韓流)라는 이름으로 국적불명의 문화를 마치 우리 것인 양 세계로 수출하고 있고, 그것이 돈을 벌어준다는 이유로 대단한 우리의 문화라 자랑한다.

향나무의 뿌리에 은행나무의 몸통을 얹는다고 은행나무가 되지도 않거니와 살 수도 없다. 젊은 층만 탓할 것은 아니다. 숭례문이 불탔다고 제를 올리고, 통곡한 노년들은 어떠한가. 과연 평소에 숭례문의 의미에 대해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고 젊은이들에게 이야기 해 보기는 했던가.

더 이상 탑골공원에서 삼삼오오 모여앉아 소주 몇 잔에 비분강개하며 자탄하는 모습은 보이지 말자. 문화노인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엔 문중을 중심으로 한 제실문화가 있었고, 그 중심에 노년세대가 있었다.

한 지역을 아우르는 문중의 사랑채에서는 지역의 문화를 지키고 전파하는데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었다. 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자문하고 협의하는 훌륭한 지역단위 문화공동체였던 셈이다. 연중 모시는 제사는 물론 절기마다 지역의 대동제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를 통해 유형, 무형의 문화양식이 전승되어 왔다. 전래된 민요와 지역의 독특한 문화양식이 어디 공교육을 통해 이루어졌던가. 이제 이런 문화협의체를 다시 복원해 볼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에겐 거대한 뿌리가 있다. 수천년을 이어온 고유한 정신문화와 장독 하나에도 깃든 아련한 미학이 숨쉬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노년세대가 나서야 한다. 알고 있는 것을 전달해야 한다. 뿌리가 굳건히 붙들고 있으면 나무는 가지 몇 개 잘린다고 쓰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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