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는 분을 현마에게로 씌우면서 항의와 공격으로 현마를 못 살게 굴었다
단주는 분을 현마에게로 씌우면서 항의와 공격으로 현마를 못 살게 굴었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8.05.25 13:46
  • 호수 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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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86]

현마는 그 뒤에도 걱정되는 마음에 미란을 찾아서 몇 차례나 연구소를 기웃거렸는지 모르나 미란들은 번번이 그를 돌려 버린 까닭에 미란이 짜장 거리로 돌아오지 않고 모를 곳으로 실종을 해버린 것으로만 여기게 되었다. 겁이 나는 바람에 별장에다 통지를 해서 세란과 단주를 부른 까닭에 피서고 말고 두 사람 또한 놀라 부리나케 집으로들 돌아왔다. 피서를 떠나기 전과 마찬가지로 집안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하면서 왁자지껄들 했으나 식구들이 모였다고 쓸데없이 설렐 뿐이지 그것이 미란을 찾아내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역시 마음이 다는 것은 현마, 다음에는 단주여서 그는 현마를 본받아 거리를 다닐 때에도 유난스럽게 주의를 하면서 혹시나 미란의 자태가 눈에 뜨이지나 않을까 하고 살피는 것이었으나 현마가 못 찾아내는 미란을 그가 찾아낼 리 만무했고 연구소에는 영훈과 온천에서 싸움한 후부터는 꺼리게 되었고 그 위에 현마의 말을 믿고는 살필 염도 안 했던 것이다.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다가 모든 곡절이 수상스러워서 단주는 분을 현마에게로 씌우면서 사무소에 단둘이 앉게나 되면 항의와 공격으로 현마를 못 살게 구는 것이었다.
“어떻게 했게 멀쩡한 사람을 충충대냈단 말요. 시원스럽게 곡절을 말하구료.”
“곡절이 무슨 곡절이겠나. 밤중에 도망한 사람의 곡절을 낸들 알 수 있나.”
단주가 아무리 족쳐도 현마로서는 마음의 비밀을 홀홀히 말할 리 없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말할 것이 아님을 하늘에 맹세하고 있는 것이다. 한 평생 비밀로서 덮어둘 것이요, 그렇듯 그것은 미란을 위해서보다도 자기를 위해서 귀중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술을 먹구 까막잡기를 하다가 밤중은 돼서 어떻게들 됐단 말예요.”
“각각 방에들 쓰러져 잔걸 낸들 나 잔 것밖엔 무얼 알겠나.”
“쓰러져 잔 것이 무얼 원망해 밤중에 도망을 쳐요.”
“그렇게 판사나 검사같이 족쳐 대면 날더러 거짓말이래두 꾸며대란 말인가.”
“거짓말은 왜 참말을 하라는 거죠. 누가 그 눈치 모르겠다구. 첨엔 그래두 영훈을 의심해서 싸우기까지 했겠나요. 허물은 바로 어두운 등잔 아래 있는 줄을 모르구.”
“시끄럽단 밖에. 쓸데없이.”
현마가 호령을 한댔자 격하기 시작한 단주는 그 한마디로 가라앉기는커녕 더욱 화를 내며 시부렁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남 멋대로 하게 버려두지 않구 왜 붙들어 놓구는 결혼을 시켜 주겠다구 얼리면서 미란만을 살짝 빼서 동경엔지로 데리구 가더니 괜히 설굳혀 음악은 무어구 피아노는 무어구 선생은 다 무어야. 남을 훼방하구는 제 놀음들만을 위주하구 그 놀음에 들어 멀쩡한 사람만 병신으로 맨들어 놓으면서 결혼은 다 무어야.――자, 언제 결혼시켜 주구 언제 모두 제대로 해준단 말요. 대체――.”
“결혼을 하느니 무어니 자기들 뜻에 달린 게지 내게 무슨 아랑곳인가.”
“그럼 왜 애초에 가만두지 못하구.”
“어떻든 결혼이구 무어구 직접 미란의 맘을 물어 볼 것이지 내게 대든들 어떻게 하란 말야.”
“남의 마음을 뒤집을 대로 뒤집구 설굳힐 대로 설굳혀 놓구 이제 와서 미란의 맘을 물어 보라구. 사람을 욕 주어두 분수가 있지――어서 미란의 맘을 제대로 바로잡아 놓든지 그렇지 않거든.”
“발칙한 것, 그렇지 않거든 어쩌란 말이야. 배은망덕두 유분수지 내게 이렇게 버릇없이 대들 법이 있단 말이냐. 개를 기르다 다리를 물리운다더니 원.”
“개니 무어니 얼마나 길러 주었다구 그런 악담을――내일부터래두 그까짓 집을 나가면 그만이지. 개는 무슨 개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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