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독전’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독한 싸움
영화 ‘독전’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독한 싸움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5.25 14:04
  • 호수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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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마약조직 소탕작전 그려… 고 김주혁 연기 인상적

암전이 되자 스크린에서는 한 남자가 차를 몰고 설원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망망대해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눈 위를 달리는 남자의 눈빛을 읽기 어렵다. 그의 알 수 없는 표정 만큼이나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풍긴다. 도대체 왜 이 남자는 낯선 설원을 달리고 있을까. 영화 ‘독전’은 이 지독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지난해 안타깝게 타계한 배우 김주혁의 유작으로 주목받은 ‘독전’이 5월 22일 개봉했다. 홍콩 느와르(어둡고 긴장감 넘치는 범죄영화)의 거장 두기봉 감독의 ‘마약전쟁’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아시아를 지배하는 유령 마약 조직의 실체를 두고 펼쳐지는 독한 자들의 전쟁을 그린다.


영화는 형사 원호(조진웅 분)의 아시아 최대 마약조직 소탕작전을 따라 전개된다. 원호가 집요하게 쫓는 대상은 조직의 보스 ‘이 선생’이지만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를 정도로 어둠 속에 감춰져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직의 소유로 추정되는 마약 제조 공장에 의문의 폭발사고가 발생한다. 이어 사고 현장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조직의 후견인 연옥(김성령 분)이 원호를 찾아와 이 선생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사고로 엄마를 잃고 조직에게까지 버림받은 락(류준열 분)은 이후 실마리를 쫓아 자신을 찾아온 원호로부터 폭발 사고의 원인을 듣고 그를 돕게 된다.
베일에 싸인 ‘이 선생’을 잡기 위해 원호는 락과 불편한 공조를 하게 되고 이들은 마약 시장의 거물 진하림(고 김주혁), 마약 조직 임원 선창(박해준), 스스로 ‘이선생’이라 주장하는 브라이언(차승원) 등을 차례로 만나며 적의 실체에 점점 접근해간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공조가 계속되던 중 두 남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락은 원호에게 “그래서 이제 어쩌실 거냐”고 묻고 영화는 또 한 번의 전환기를 맞는다.
이번 작품의 힘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에 있다. 기존 느와르 작품들이 남성미만을 강조했다면 이 작품엔 다양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해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형사 ‘원호’와 신비스러운 조직원 ‘락’으로 범죄물의 기존 틀을 지키면서도, 그 안에 잔인하지만 때론 철없는 아이 같은 보스 진하림, 매번 ‘교화’를 부르짖는 악인 브라이언, 선과 악 사이를 넘나드는 남녀 농인 조력자 등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캐릭터들을 배치해 객석을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김주혁의 연기다. 농담과 진담 사이 섬뜩한 공포가 오가는 그의 연기는 마약상이라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 관객을 서늘하게 만든다. 진하림의 연인 보령으로 출연한 진서연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원호가 진하림과 보령을 처음 만나 작전을 진행하는 부분은 영화가 끝나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마약왕 ‘이 선생’에 대한 수수께끼를 지루할 틈 없이 풀어나간 감독의 연출력도 영리하다. 자칫 정체 캐기에 몰두해 지루하게 전개될 수 있는 이야기를 ‘이 선생이 왜 그랬는가’로 자연스럽게 초점을 옮기면서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러닝타임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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