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여행가 배상섭 “대한노인회 우정연수원 건물·경관 뛰어나 그림으로 남겼어요”
그림 그리는 여행가 배상섭 “대한노인회 우정연수원 건물·경관 뛰어나 그림으로 남겼어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06.01 13:54
  • 호수 6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국 명소 2774곳 그림·글 담은 ‘스케치 파노라마’ 11권 펴내 

“내가 살았던 우리 산천의 모습, 우리 시대 이야기 남기고 싶어”

[백세시대=오현주기자]

중·고교 국어교사 출신의 배상섭(73)씨는 퇴직 후의 삶이 더 보람 있고 행복하다. 전국의 명소를 찾아다니며 인상 깊은 건물이나 풍경을 스케치해 글을 붙여 블로그에 올리고 책으로 펴내는 작업이 재미있어서다. 배씨는 “하루 하나씩 그림과 관련 글을 블로그에 올리다보면 일 년에 책 한권이 돼서 나온다”며 “2006년 학교를 나오면서 시작해 지금까지 총 11권을 썼다”며 환하게 웃었다. 5월 30일 펴낸 ‘한국의 인문 지리지 스케치 파노라마 11’에는 전북 무주에 위치한 대한노인회 ‘우정연수원’도 들어 있다. 충남 아산시 용연로에 사는 배씨에게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와 전국을 다니며 겪은 에피소드를 들었다.  

배상섭씨가 스케치 한 대한노인회 우정연수원
배상섭씨가 스케치 한 대한노인회 우정연수원

-‘우정연수원’ 그림도 있다.

“제가 사는 휴먼시아아파트단지가 7년 전 이곳에 들어서면서 2단지 경로당이 처음 생겼다. 당시 관리소장의 부탁으로 경로당 설립에 관여해 초대 회장을 지냈다. 그런 인연으로 지난 4월 초, 아산지역 노인지도자 연수단에 끼어 우정연수원을 찾았을 때 건물의 경관과 시설을 본 순간 그리고 싶었다.” 

배씨는 “노인의 취향에 맞게 온돌방이었고 오르내리는 계단도 완만하게 만들어놓는 등 노인을 배려한 설계가 마음에 들었다”며 “노인을 불러내 잠깐이라도 사각모와 청색 가운을  걸친 대학생으로 만들어 가슴 들뜨게 해주어 고마웠다”고 덧붙였다.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게 됐나.

“우리가 대학 다니던 시절엔 캠핑이 유행했다. 대부분 술 먹고 노래 부르며 시간을 보냈지만 제 경우는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 가장 처음에 그린 게 1965년 유달산이었다.”

배씨는 어릴 적 주변에서 쉽게 구했던 ‘스케치약화사전’이란 소묘 책자를 접하면서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한다. 그는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지 못했고 채색을 잘 못해 미술 성적이 좋지는 않았다”며 웃었다. 하지만 40년 넘게 스케치를 한 덕분에 이동 중에도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씨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집을 나선다. 배낭에는 A4용지보다 작은 크기의 도화지와 사인펜, 간식과 자신의 책 두세 권이 담겨 있다. 책은 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젊은이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다. 한때 승용차를 운전했지만 요즘은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이용한다. 목적지에 닿으면 먼저 관광안내소를 찾아가 지도부터 확보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앉아서 그렸으나 시간이 많이 소요돼 서서 그린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집에 와서 그림으로 옮겨 본 적이 있지만 현장감이 떨어져 그만 두었다. 배씨는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은 현장에서 그린 것과 다르고 마음에도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략 몇 군데를 다녔나.

“최근 펴낸 책의 마지막 그림이 ‘2774. 제주 협재 해안’이다. 그 번호만큼 찾아다녔다.” 

배씨는 집에 돌아와 다음 블로그 ‘스케치 1365’에 그림을 올리고 글을 쓰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책은 잘 팔리는지.

“자비로 책을 내고 있지만 팔기 위한 건 아니다. 제가 2000년에 시조시인으로 등단했다. 충남·부산·경남문인협회 동료문인들과 주변의 지인들에게 나눠준다.”

-왜 이 일을 계속하는가.

“내가 살았던 우리 시대 산천의 모습, 내가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배씨는 “짚신 신고 백두산을 7번이나 올라 우리나라의 지도를 처음 완성시킨 김정호와 전국의 설화, 전설을 채취해 ‘삼국유사’를 펴낸 일연스님의 정신을 이어 받고 싶다”는 말도 했다.

-가볼만한 곳은 어디인가.

“우리 자연을 제대로 보려면 자전거를 타고 4대강을 다녀봐야 한다. 자동차를 타면 남들 보는 정도밖에 보지 못한다. 국토교통부와 행정자치부 장관 명의의 4대강 자전거 길 완주 인증서도 받았다.”

-산수가 빼어난 곳은.

“태백산맥을 등뼈로 해 충북에 아름다운 산이 몰려 있다.”

-자연환경 보존은 잘 되고 있는지.

“4대강의 예를 보면 현지주민들은 좋아졌다고 반기더라. 한강 3개, 낙동강 8개, 금강 3개, 영산강 2개 등 모두 16개의 보가 있다. 보마다 어도와 수문, 소 수력발전소, 자전거 길, 물 문화관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 감탄했다.”

-물이 썩고 녹조가 생겨 실패한 국가사업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강은 항상 빗물이 흘러들어가 물이 넘치게 마련이다. 강가를 들여다보면 물고기들이 와글와글하다. 비가 오지 않고 햇빛이 내리쬐면 녹조는 생기기 마련이다. 녹조는 일부 지역에 한해 보이는 현상이다.”

배씨는 이어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강가의 국유지를 무단 점유해 농사를 짓는 이들을 설득해 다 내보내고 축대를 쌓고 자연친화적으로 신경 써서 만든 국가사업”이라고 덧붙였다.  

-위험했던 적은.

“교직에 있을 때 해안선을 돌기로 작정하고 강원도 거진에서 시작해 강화 석모도까지 자동차로 도는데 4년이 걸렸다. 바다는 바로 대양과 연결된 ‘열린 바다’와 중간에 섬들이 있는 ‘닫힌 바다’가 있다. 열린 바다의 절벽은 수직이라 위험하고 닫힌 바다는 완만하게 생겼다. 학생 시절 기계체조도 하고 바위 타는 걸 좋아했었다. 다행히 절벽을 타는데 그때의 경험이 도움이 됐다.”

-보람 있는 노후를 보내려면.

“여행 중에 연극배우 추송웅(1941~1985)의 누님을 우연히 만났다. 구십이 넘은 나이에도 책을 사기 위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온다고 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한 달에 책 한 권씩 보는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노인이 되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지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하릴없이 세월만 보내는 무의미한 삶이 되지 않는다.”

배상섭 씨는 ‘노인이 가볼만한 장소를 추천해 달라’고 하자 순천만과 국가정원 등 10곳을 소개하며 모두 “경관 좋고 찾아가기 쉬운 곳”이라고 말했다. 서울대공원, 대천해수욕장, 산정호수, 대야산 휴양림, 서산 용현휴양림, 영주 무섬마을, 함양 상림, 법주사와 그 계곡, 인제 자작나무숲 등이다. 

배씨는 “몇번을 다녀와도 물리지 않는 좋은 관광지가 순천만 국가정원”이라며 “중국의 이화원을 떠올리게 하는 재밌는 구조로 평지의 흙을 파내 한 쪽엔 호수를 만들고 그 파낸 흙으로는 산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배상섭 씨는 충남발명가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20여명의 회원들이 발명 이야기를 나누고 친목도 꾀하는 단체이다. 배씨는 “발명 전시회에 빠짐없이 나가며 발명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협회 일에 매달린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